안토니오 로셀리노의 대리석 재작업 시도
안토니오 로셀리노가 앞서 가공한 대리석을 다시 맡았으나 작품을 완성하지 못함. 대성당 측 기록에 나타나는 두 번째 제작 시도였음.
재료의 형태와 기존의 절삭 흔적은 다음 조각가가 선택할 수 있는 표현의 범위를 제한했음. 1501년 미켈란젤로가 맡은 작업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해야 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새 조각을 만드는 것 이상의 어려움을 지니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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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로셀리노가 앞서 가공한 대리석을 다시 맡았으나 작품을 완성하지 못함. 대성당 측 기록에 나타나는 두 번째 제작 시도였음.
재료의 형태와 기존의 절삭 흔적은 다음 조각가가 선택할 수 있는 표현의 범위를 제한했음. 1501년 미켈란젤로가 맡은 작업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해야 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새 조각을 만드는 것 이상의 어려움을 지니고 있었음.
제219대의 교황 교황 클레멘스 7세. (~1534년)
음력 9월 법전을 다시 검토하자는 논의에 따라 감교청을 설치함. 《경국대전》과 속록의 조항을 고쳐 최종 확정본을 마련하는 작업으로 이어짐.
음력 정월 초하루 최종 개정본인 《을사대전》을 시행함. 이후 다시 고치지 않을 기본 법전으로 확정한 《경국대전》의 완성 단계임. 호전의 호적 조항에는 서울과 지방에서 다섯 집을 한 통으로 묶고 통주를 두도록 한 오가작통 규정도 담김.
조선의 제11대 국왕 중종. (~1544년)
그라나다의 마지막 나스르 왕조 군주 보아브딜이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에게 수도를 넘기면서 이베리아반도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슬람 왕국의 통치가 끝남. 흔히 레콩키스타의 종결로 인식되는 사건이며, 근세 스페인 왕권 강화와 이후 종교·사회 질서의 변화로 이어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끄는 스페인 원정대가 대서양을 횡단해 카리브해 바하마 제도의 과나하니섬에 도착하고 이곳을 산살바도르라고 명명함. 이 지역에는 이미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원정대의 도착은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의 지속적인 접촉 및 식민지 확대의 계기가 됨. 1492년 10월 12일은 당시 율리우스력 기준 날짜임.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브 1세 바사. (~15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