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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9월의 기록 3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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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금

일자 미상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뒤 일본 지도부가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의 철수를 추진함. 남해안의 일본군이 순차적으로 철수하면서 전쟁은 노량해전을 포함한 최종 철수 단계로 들어감.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뒤 일본의 최고 지도부는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의 철수를 지시. 남해안의 일본군은 각 거점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대치하던 명군과 철수 교섭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전쟁의 중심도 공세와 거점 유지에서 철수로 이동.

순천왜성의 고니시 유키나가군 역시 철군을 추진했으나 조선은 일본군의 무사 철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순신은 해상에서 퇴로를 막으려 함. 이러한 철수 정책과 이를 저지하려는 조선 수군의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순천왜성 봉쇄와 노량 해전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전쟁 국면이 형성됨.

1598년 9월 말부터 10월 초 조·명 연합군이 사로병진작전의 일환으로 순천왜성을 육상과 해상에서 압박. 고니시 유키나가군은 철수를 모색했으나 이순신과 진린의 수군이 해상 퇴로를 막으면서 순천 일대에 고립된 상태가 이어짐.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뒤 일본군이 철수 단계로 들어간 가운데, 조·명 연합군은 남해안의 일본군 거점을 동시에 공격하는 사로병진작전을 전개. 순천 방면에서는 명나라 장수 유정과 조선군이 육상에서 순천왜성을 공격하고, 이순신과 명 수군 도독 진린이 이끄는 수군이 해상에서 호응.

순천왜성의 고니시 유키나가군은 육상과 해상 양쪽에서 압박을 받으며 철수를 모색했으나 해상 퇴로가 차단돼 쉽게 빠져나가지 못함. 육상 공격은 결정적인 함락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고니시군의 안전한 철수가 어려워진 상황은 이후 구원 요청과 노량 해전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군사적 배경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