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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12월 16일 이순신과 명 수군 도독 진린이 이끄는 조·명 연합 수군이 노량 해역에서 철수 중인 일본 수군과 벌인 해전. 임진왜란의 마지막 대규모 해전으로 일본 함대에 큰 피해를 입혔으며, 전투 막바지 이순신이 전사.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이후 일본군이 조선에서 철수를 서두르던 가운데, 순천 왜교성에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군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 수군이 노량 해역으로 이동.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진린이 지휘하는 명 수군은 일본 함대의 이동을 차단하고 공격하기 위해 노량 일대에서 연합 작전을 전개.

1598년 12월 16일 새벽 조·명 연합 수군과 일본 수군 사이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으며, 전투는 노량에서 관음포 일대로 이어짐. 연합 수군은 철수하려던 일본 함대를 공격해 상당한 피해를 입혔고, 일본 함대 일부는 전투를 뚫고 빠져나감. 명 수군에서도 등자룡이 전사하는 등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은 격전.

전투 막바지 이순신은 일본 함대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총탄을 맞아 전사. 그러나 전투는 계속됐고 조·명 연합 수군은 일본군의 퇴각을 압박. 노량 해전은 일본군 철수 자체를 결정한 전투라기보다 이미 진행 중이던 철수 국면에서 벌어진 마지막 대규모 해상 결전으로, 임진왜란 종결을 상징하는 전투로 남음.

1598년 12월 16일 노량 해전에서 조·명 연합 수군을 지휘하던 이순신이 철수하는 일본 함대를 추격하던 중 총탄을 맞아 전사. 임진왜란의 마지막 대규모 해전 도중 발생한 죽음.

1598년 12월 16일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은 명 수군 도독 진린과 함께 철수하려는 일본 함대를 공격하며 전투를 지휘. 전투가 노량에서 관음포 일대로 이어지는 가운데 조·명 연합 수군은 일본 함대에 큰 피해를 입히며 추격전을 계속함.

전투 막바지 이순신은 지휘 중 총탄을 맞아 전사. 그의 죽음은 전투가 끝나기 전에 발생했으며, 지휘부는 전열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이를 즉시 널리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짐. 이후 조선 수군은 전투를 이어가 일본 함대의 철수를 압박.

이순신의 전사는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의 마지막 대규모 해전과 겹치며 강한 상징성을 갖게 됨. 노량 해전의 승전과 함께 그의 생애 마지막 전투로 기억되며, 이후 조선에서는 전쟁 수행과 수군 지휘에서의 공적을 기리는 평가가 이어짐.

노량 해전으로 조·명 연합수군과 일본 구원함대가 격전을 벌이는 동안 순천왜성에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군이 포위망을 벗어나 철수. 이후 일본군은 부산 방면으로 집결해 조선에서의 철수를 이어감.

노량 해전의 직접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는 순천왜성에 고립된 고니시 유키나가군의 해상 철수를 차단하는 것이었음. 그러나 조·명 연합수군이 시마즈 요시히로 등이 이끄는 일본 구원함대와 노량·관음포 일대에서 격전을 벌이는 사이, 고니시군은 순천왜성에서 빠져나갈 기회를 확보.

고니시군은 남해도 남쪽 방면을 거쳐 철수해 시마즈군 등과 함께 부산에 집결. 노량 해전에서 일본 구원함대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고니시군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함.

이 사건은 노량 해전의 승패와 별개로 일본군 전체의 철수가 이미 진행 중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 순천왜성 주둔군의 철수 이후 일본군은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갔고, 정유재란은 종결 단계에 들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