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나리아키 출생
일본의 제9대 미토 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 (~1860년)
일본의 제9대 미토 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 (~1860년)
험프리 데이비가 아산화질소 실험을 다룬 저술에서 이 기체를 수술 통증을 줄이는 데 사용할 가능성을 제안함. 감각과 의식에 미치는 작용을 관찰하는 데서 나아가 의료적 활용을 생각한 것임.
그러나 이 제안이 곧바로 널리 쓰이는 수술 마취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음. 약물의 효과를 알아차리는 일과 환자에게 안정적으로 적용하는 일 사이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었음.
정약용이 천연두 예방을 위해 연구한 종두 관련 내용을 『마과회통』 권말 부록 『종두심법요지』에 수록함. 청나라 의서에 실린 『유과종두심법요지』와 『정씨종두방』을 바탕으로 내용을 재편한 문헌.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에서 천연두 예방을 위한 인두 접종의 방법과 필요성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초기 사례.
미국의 사업가 새뮤얼 보건 메릭 (~1870년)
아버지 조지 오스틴의 은퇴로 가족이 제인 오스틴의 어린 시절 생활 기반이던 스티븐턴을 떠나 배스로 이주함.
핀란드의 문헌학자 엘리아스 뢴로트. (~1884년)
조지 F. 홉킨스가 새로 조판하고 교정한 판본을 내놓음. 이후 텍스트 계보에서 중요한 판본이 되었으나, 해밀턴이 개정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는 후대 증언이 서로 달라 단정에 주의가 필요함.
엘뢰테르 이레네 뒤퐁이 이끄는 E. I. du Pont de Nemours & Co.가 미국에서 법인으로 설립됨. 회사는 전해 파리에서 조직됐으며, 델라웨어주 브랜디와인 강변에 일루서리언 밀스 화약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함.
공장은 1803년 가동에 들어갔고, 첫 화약 판매 기록은 1804년에 남아 있음. 수력을 사용하는 화약 제조가 초기 사업의 기반이었음.
오빠 헨리 오스틴을 통해 《수전》의 원고를 출판사 Crosby & Co.에 10파운드에 넘겼으나 실제 출간으로 이어지지 않음. 이 작품은 이후 판권을 되찾아 《노생거 사원》으로 사후 출간됨.
프랑스의 정치인 자크 네케르. (1732년~)
이탈리아의 발레리나 마리 탈리오니. (~1884년)
독일의 조류학자, 파충류학자 헤르만 슐레겔. (~18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