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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809년의 기록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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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1807 ·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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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1세가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예나에서 프로이센·작센군을 격파하고, 같은 날 루이 니콜라 다부 원수가 지휘하는 별도의 프랑스군이 아우어슈테트에서 우세한 프로이센군을 무너뜨린 두 전투.

두 전장의 패배로 프로이센군의 지휘·방어 체계가 붕괴하고 프랑스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계기가 마련됨. 나폴레옹 전쟁 중 프로이센의 중대한 패전으로, 이후 군사·행정 개혁의 배경이 된 사건.

벨퍼 포터리의 도공이던 윌리엄 본이 알프레턴–더비 간 유료도로 공사 중 드러난 대규모 점토층을 감정하도록 불려감. 더비셔는 점토와 석탄이 풍부해 당시 영국 도자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였고, 본은 이 점토의 높은 품질을 단번에 알아봄. 이 발견이 이듬해 덴비 포터리 설립으로 이어진 출발점.

미국의 제3대 부통령이었던 에런 버(Aaron Burr)가 연방 대배심에 의해 반역죄로 공식 기소.미국의 영토를 분리하여 독립된 제국을 세우려 한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기록.

밀가루 상인이었던 제시 홀리가 버펄로와 올버니를 수로로 연결하자는 글을 발표함. 운송 문제로 사업에 실패해 채무자 감옥에 있던 그는 운하의 예상 경로와 비용, 경제적 이점을 설명했음.

이 구상은 처음부터 국가적 합의를 얻은 사업이 아니었음. 상업 현장의 운송 불편을 해결하려던 제안이 정치권의 검토와 주정부의 공공사업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출발점임.

윌리엄 본이 점토층 자리에 도자기 공방을 세우고, 운영은 20대 초반의 막내아들 조셉에게 맡김. 회사는 조셉의 이름을 따 '조셉 본(Joseph Bourne)'으로 불렸고, 솔트글레이즈 스톤웨어 병·항아리를 만들며 빠르게 자리 잡음. 217년을 이어갈 덴비 포터리가 시작된 해.

덴비 포터리 컴퍼니

프랑스 정부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동행한 학자와 예술가들의 조사 결과를 모은 『이집트지(Description de l’Égypte)』의 간행을 시작했음. 고대 유적과 건축, 지형, 자연과 주민 생활을 도판과 글로 기록한 대규모 출판 사업이었음.

이는 훗날 오리엔탈리즘 연구가 다루게 되는 역사적 배경임. 군사 원정과 지식의 수집·분류가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학문과 제국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으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출판물이 프랑스 건축과 장식미술의 이집트 취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함. 이때 비평 개념 자체가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