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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2월의 기록 3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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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화

고종과 왕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김. 을미사변 이후 왕의 신변이 위협받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이동으로, 건청궁은 왕실의 주요 거처 기능을 잃게 됨.

의병 진압을 위해 중앙 병력이 지방으로 이동한 가운데 이루어진 아관파천으로 김홍집 내각이 무너짐. 이후 새 정부는 민심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단발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꿈. 왕의 거처 이동은 단발령의 강제 시행이 끝나는 정치적 전환점이었음.

일자 미상

청일전쟁(1894)으로 중국인 인부들이 돌아가고 재정난까지 겹쳐 공사가 지체되던 중, 설계·감독을 맡은 코스트 신부가 벽체 공사가 끝나갈 무렵인 1896년 2월 선종함. 뒤를 이어 프와넬 신부가 감독을 맡아 내부 공사를 속행함. 설계자의 죽음에도 공사가 멈추지 않고 완공까지 이어진 전환점.

명동성당

아관파천으로 김홍집 내각이 무너진 뒤 새 정부가 단발의 강제 시행을 거두고 머리 모양을 개인의 의사에 맡기도록 함.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민심을 수습하려는 정책 전환이었음.

강제가 철회되었다고 해서 단발한 사람들이 모두 상투로 돌아가거나 서양식 머리 모양의 확산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음. 이후에도 직업과 지역에 따라 상투와 짧은 머리가 공존했으며, 대한제국기에는 특정 공직 집단을 대상으로 단발을 다시 요구함.

단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