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처리 장치에 관한 미국 특허 제808897호를 취득함. 온도뿐 아니라 수분을 조절하는 공기조화 기술을 지식재산으로 정리한 중요한 단계가 됨.
러일 강화 뒤인 1905년 11월 러시아군 포로 송환이 시작되고, 나라시노 포로수용소가 1906년 1월 폐쇄됨. 수용소 건물과 부지는 이후 나라시노 연습장에 온 일본군 부대의 임시 숙소인 다카쓰 병영으로 이용됨. 1915년 제1차 세계대전기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군 포로 수용으로 이어지는 시설 전환.
한성 통감부 개청
일본이 한성에 통감부와 부속 관청을 개설하고 업무를 시작한 사건. 을사늑약으로 박탈한 외교권을 통감이 장악하고 고문·일본인 관리 등을 통해 대한제국의 내정까지 통제하는 기구의 출범. 초대 통감으로 임명된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하기 전 임시 통감 체제로 업무를 시작한 경과.
체스터 칼슨의 출생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체스터 플로이드 칼슨의 출생. 어린 시절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인쇄와 과학에 관심을 키웠으며, 훗날 빛과 정전기를 결합한 복사 기술의 발명가로 성장.
용산에서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 이르는 경의선 전 구간의 열차 운행이 시작됨. 한반도 서북부의 주요 도시가 철도로 이어졌고, 경부선과 연결되는 남북 간선축이 형성됨.
철도는 사람과 상품의 이동 범위를 넓혔지만, 건설과 운영을 장악한 일본의 군사·정치적 목적에도 복무했음. 개통을 근대 교통의 발전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식민지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도 함께 이해해야 함.
1906년 4월 18일 수요일 오전 5시 12분 북부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발생한 진도 7.9 규모의 대지진. 3천 명 이상이 사망했고 도시의 80% 이상이 파괴됨.
이은혜 (교육인) 출생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교육인 이은혜. (~1980년)
진명여학교 개교
여성에게 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한성부 창성동에서 진명여학교가 개교. 순헌황귀비가 교지를 지원하고 엄준원이 설립을 추진해 초대 교장을 맡았으며, 2년제 보통과에 여학생 70명이 입학
에디 알버트 출생
미국의 배우, 영화제작자 에디 알버트. (~2005년)
볼프강 아벤트로트 출생
독일의 법학자 볼프강 아벤트로트. (~1985년)
앙드레 베유 출생
프랑스의 수학자 앙드레 베유. (~1998년)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1977년)
조홍제 출생
대한민국의 기업인 조홍제. (~1984년)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 (1828년~)
로버트 블랙 출생
영국의 행정가 로버트 블랙. (~1999년)
조지 시라스 3세가 촬영한 야생동물 사진을 집중적으로 소개함. 섬광과 원격 촬영 장치를 활용해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던 밤의 동물 행동을 보여 줌. 자연을 관찰하는 촬영 기술과 대중 잡지의 시각적 설명이 결합한 사례로, 이후 야생동물 사진 보도의 중요한 기반이 됨.
동료들과 독립해 《아메리칸 매거진》 발행
맥클루어의 사업 확장 계획을 둘러싼 갈등 끝에 1906년 3월 기존 잡지를 떠난 타벨과 동료 편집진. 존 필립스, 레이 스태너드 베이커, 링컨 스테펀스 등과 자금을 모아 기존 《아메리칸 매거진》을 인수하고 같은 해 10월 자신들의 첫 호를 발행. 은행과 보험 등까지 결합하려던 맥클루어의 구상은 이들이 비판해 온 투기적 사업 방식과 닮았다는 우려를 낳은 배경. 새 매체에서는 관세와 산업, 사회문제를 다루며 기자와 편집자의 전문적 수단으로 공적 논쟁에 참여한다는 방향을 유지. 유명 기자의 독립이 단순한 이직을 넘어 자본 조달과 공동 경영의 책임까지 수반한 사건.
마리 퀴리가 1906년 11월 5일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교에서 물리학 강의를 처음 진행함. 같은 해 사망한 남편 피에르 퀴리의 강좌를 이어받은 것으로, 소르본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교수 강의를 맡은 사례 가운데 하나임. 여성의 고등교육 및 과학계 진출과 방사능 연구사의 중요한 이정표임.
미국 법무부, 스탠더드 오일에 연방 반독점 소송 제기
미국 정부가 뉴저지의 스탠더드 오일과 계열사 등을 상대로 셔먼법 위반 소송을 제기한 사건. 장기간의 기업 인수와 주식 지배, 철도·송유관을 둘러싼 차별적 거래 등으로 석유산업의 경쟁을 제한하고 독점력을 유지했는지가 주요 쟁점. 1892년 오하이오주의 회사법 소송과 달리 연방 반독점법을 근거로 결합의 해체를 요구한 절차이며, 1909년 하급심의 해체 명령과 1911년 연방대법원 판단으로 이어진 연방정부의 독점 규제.
대화재로 훼손된 경운궁의 주요 전각을 다시 짓고 궁궐 체계를 정비함. 중화전은 화재 이전의 중층 건물보다 규모를 줄인 단층 형태로 재건되었으며, 동쪽의 대안문을 수리하고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꿈. 대한문이 정문 역할을 맡으면서 궁궐의 출입 방향과 중심 동선에도 변화가 생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