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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2월의 기록 3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3건 표시

21 · 목

《대한매일신보》가 1907년 2월 21일 「국채일천삼백만원보상취지」를 가장 먼저 게재한 뒤 기사·논설·기고와 의연금 광고를 통해 운동을 지속적으로 알림. 의연자가 급증하자 지면을 확대하고, 명단을 모두 싣지 못할 때에는 별도 부록을 발행해 성명과 금액을 공개함. 언론을 통한 공개 모금이 대구에서 시작된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핵심 기반이 됨.

국채보상운동

1907년 2월 21일 김광제와 서상돈 등이 작성한 「국채일천삼백만원보상취지」가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됨. 대한제국 국민 약 2,000만 명이 3개월 동안 담배를 끊고 매달 20전씩 모아 일본에 대한 국채 1,300만 원을 갚자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함. 대구에서 시작된 제안이 신문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고 각지의 단연회와 국채보상단체 결성으로 이어지는 계기.

국채보상운동

22 · 금

1907년 2월 22일 서울에서 김성희·유문상·오영근 등이 국채보상기성회를 조직하고 취지서와 회칙을 마련함. 국민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대한 국채 1,300만 원을 갚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서점·약국·《대한매일신보》사·잡지사 등을 의연금을 받는 수전소로 지정함. 서울에 모금·보관 체계가 마련되면서 각 지역과 계층의 국채보상 조직 결성이 확산됨.

국채보상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