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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0월의 기록 7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7건 표시

03 · 목

1929년 10월 3일 세르브·크로아트·슬로벤 왕국의 공식 국명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변경됨.

알렉산다르 1세의 왕권 강화와 국가 통합 정책 아래 기존 국명이 ‘유고슬라비아’로 바뀌면서 국가 정체성을 단일한 유고슬라비아 개념으로 재편하려는 시도가 공식화됨. 이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기까지 이어졌으며 이후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성립의 전사에 해당함.

08 · 화

경성과 평양의 대표 선수들이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첫 경평축구대항전을 벌였음.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회는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세 경기로 진행되었고, 평양 대표팀이 2승 1무를 기록했음.

당시의 대표팀은 1933년에 정식 창단되는 경성축구단·평양축구단과 구분할 필요가 있음. 학교와 민간 축구단에서 모인 선수들의 대결이 도시 전체의 관심사로 커지면서, 경평전은 근대적인 관람 스포츠와 도시 라이벌 문화의 상징이 되었음.

24 · 목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대규모 매도 주문이 몰리며 주가가 급락. 주요 금융인들의 매수 개입으로 당일 낙폭이 일부 회복됐지만, 10월 28~29일 추가 폭락이 이어졌음. 이날의 주식시장 혼란과 이후 전개된 세계 대공황은 구분해야 함.

28 · 월

1929년 10월 28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약 12.8% 떨어진 이른바 ‘블랙 먼데이’ 발생. 나흘 전 검은 목요일 이후 가라앉지 않은 매도 압력이 다시 급증했고, 다음 날 검은 화요일에도 폭락이 이어짐. 미국의 증권시장 붕괴가 금융·경제 전반의 위기로 심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이며, 이후 세계 대공황과 연결되는 역사적 전환점임. 다만 대공황의 발생 원인을 이날의 주가 하락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음.

세계 대공황

29 · 화

1929년 10월 2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규모 투매가 발생해 약 1,640만 주가 거래되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약 12% 하락함. 전날 블랙 먼데이에 이어 주가 폭락이 계속된 ‘검은 화요일’로, 1929년 주식시장 붕괴와 이후 세계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금융 불안의 상징적 사건임. 1929년 가을의 주가 급락은 대공황 악화의 중요한 계기였지만 은행 위기, 통화 긴축, 국제 금본위제와 무역 위축 등 다른 원인도 함께 고려해야 함.

검은 화요일 세계 대공황

31 · 목

한글날 기념식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각계 인사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고 우리말 사전 편찬에 착수함. 신명균·이극로·이윤재·이중화·최현배가 집행위원으로, 이극로·이윤재·한징 등이 편찬원으로 선정됨. 28년 뒤 『큰사전』 완간으로 결실을 맺는 대장정의 출발점.

조선어학회 이극로 집행위원

일자 미상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 작가의 창작 조건과 문학적 계보를 논하면서 제인 오스틴을 중요한 선배 작가로 다룸. 후대 연구에서는 울프가 가족 전기에서 형성된 온순한 작가 이미지를 넘어 오스틴을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여성 작가이자 모더니즘의 선행자로 다시 읽은 과정으로 평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