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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의 기록 9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9건 표시

05 · 화

1948년 10월 5일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국제자연보전연맹의 전신인 국제자연보호연맹이 창립됨.

창립 회의에는 정부와 국제기구, 자연보전 단체가 함께 참여했으며, 국가와 시민사회를 한 조직 안에서 연결한 최초의 세계적 환경보전 연합으로 출발함. 이후 IUCN은 종 보전, 보호지역, 자연자원 관리와 IUCN 적색목록 등 국제 자연보전의 기준과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 중심 기관으로 발전함.

09 · 토

트루먼 대통령이 NSC 13/2를 승인하여 미국의 안보 이익과 일본의 경제회복을 중심으로 대일 정책을 정리한 사건. 당장의 강화 추진은 서두르지 않되 장차 조약을 짧고 일반적이며 징벌성이 적은 형태로 만들겠다는 방침의 확정. 일본의 산업 재건과 점령 통제 축소를 준비하면서 1951년의 관대한 강화 방식으로 이어지는 정책적 토대 마련.

17 · 일

1948년 11월부터 5개월 동안 진행된 초토화 작전으로 진압군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함. 중산간 마을 134개가 모두 불에 탐. 제주 4.3 사건 희생자의 2/3인 9,700 여명이 초토화 작전으로 목숨을 잃음.

19 · 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이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 봉기는 순천 등으로 확대되었고 정부군의 진압 과정에서 군인·경찰뿐 아니라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됨. 발단인 10월 19일과 이후 수일간 이어진 진압 및 민간인 희생을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는 사건.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일부 병력이 제주4·3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했음. 지창수 등 남로당 계열 군인들이 주도한 봉기는 여수와 순천 및 전남 동부로 확산되었고, 이 과정에서도 경찰과 우익 인사 등에 대한 살해가 발생했음. 정부수립 약 두 달 만에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이승만 정부는 군사 진압을 추진했음.

정부는 10월 21일 광주에 토벌 지휘부를 설치하고 22일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음. 정부군이 주요 지역을 다시 장악하는 동안 주민들을 모아 반란 가담자를 가려내는 색출이 진행되었고, 고발이나 지목만으로 법적 절차 없이 처형하는 일이 일어남. 이후 김지회가 지휘를 맡은 반란군 일부는 지리산 등 산악지대로 이동했고, 군·경의 토벌과 주민 희생은 도시 탈환 이후에도 이어짐.

여순사건은 이승만 정부가 군 내부의 좌익 세력을 제거하는 숙군을 확대하고, 1948년 12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됨. 진압 과정의 민간인 집단희생과 유족에 대한 낙인은 장기간 지속됨.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의 해설은 정부군의 진압과 부역자 색출을 국가폭력의 구체적 과정으로 설명함.

22 · 금

할로이드가 디트로이트의 광학 학회 모임에서 새로운 건식 복사 공정을 공개함. 칼슨의 첫 복사 성공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 이루어진 시연으로, 전자사진 기술이 ‘제로그래피’라는 이름으로 대중 앞에 등장한 단계. 당시 공정은 아직 조작이 복잡해 편리한 사무용 기계로 발전시키는 추가 개발이 필요한 단계.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의 제주4·3사건 진압 명령 거부로 시작된 여수·순천 10·19사건이 전남 동부의 여러 지역으로 확대됨. 정부는 10월 22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여수·순천 일대 탈환 작전을 전개함. 뒤이은 군사 진압과 연좌·색출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되어 이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대상이 됨.

26 · 화

파리 메신 거리 7번지에 60석 규모 상영관과 영화박물관을 개관함. 작은 상영 공간은 이후 트뤼포·고다르·리베트 등 젊은 영화인들이 작품을 함께 보고 논쟁하는 장소가 되었음. 영화 보존과 관객의 만남이 새로운 영화 문화를 기르는 토대가 된 시기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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