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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회원 대거 검거

(84년 전)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하고 10월 1일 이중화·장지영·최현배 등 11명을 시작으로 회원과 후원자들을 잇달아 검거함. 1943년 4월까지 33명이 붙잡혀 치안유지법 내란죄로 몰렸고, 사전 편찬 원고와 서적은 모두 압수됨. 학회 활동과 『큰사전』 편찬이 전면 중단된 일제 말기의 대표적 민족 탄압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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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내용

발단

1942년 여름 함흥영생고등여학교 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친구들과 조선말로 대화하다 조선인 경찰에게 적발되어 취조를 받음. 일제는 학생들에게 민족주의적 감화를 준 인물로 조선어사전 편찬원 정태진을 지목하고, 9월 5일 그를 연행해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주의 단체라는 자백을 받아냄.

전개

10월 1일 이중화·장지영·최현배 등 11명이 서울에서 구속되어 함경남도 홍원으로 압송된 것을 시작으로, 1943년 4월 1일까지 모두 33명이 검거되고 48명이 증인으로 끌려가 혹독한 취조를 받음. 홍원경찰서는 사전 편찬 가담자와 재정 후원자 전원을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로 몰았고, 이극로·이윤재·최현배·이희승·정인승·한징 등 16명이 기소되어 함흥형무소 미결감에 수감됨.

결과

수감 중 이윤재(1943년 12월)와 한징(1944년 2월)이 고문과 추위·굶주림 속에 옥사함. 1945년 1월 함흥지방재판소는 이극로 징역 6년, 최현배 징역 4년, 이희승 징역 2년 6개월 등 실형을 선고함.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한다'며 사전 편찬 자체를 민족운동으로 규정한 판결로, 학회는 사실상 해산되고 『큰사전』 편찬도 중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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