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 대구 소모방 공장 준공
대구시 북구 침산동 일대 약 7만 5천 평 부지에 소모방적·방모방적·직기·염색가공 설비를 갖춘 공장을 준공. 자체 기술로 완성한 국내 최초의 소모방 생산 공장으로, 국산 모직물 대량 생산의 기반을 마련. 한국 근대 섬유산업의 거점이 된 시설.
1954년 이병철이 설립한 제일모직공업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모직·화학·전자재료 기업. 국산 양복지 골덴텍스를 생산한 뒤 사업을 다각화했으며, 2013년 패션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이전하고 2014년 7월 기존 제일모직 법인은 삼성SDI에 흡수합병됨. 한편 삼성에버랜드가 2014년 7월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꾸고 2015년 삼성물산과 합병해,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은 서로 다른 법인이 순차적으로 사용함. 2015년 합병을 둘러싼 주주·국가 책임 분쟁은 2026년 국제중재 환송판정까지 이어짐.
제일모직공업은 한국의 섬유제품 국산화를 위해 1954년 설립돼 대구 공장과 골덴텍스를 바탕으로 성장함. 이후 화학·전자재료·패션 등으로 사업을 넓혔으며 2013년 패션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양도함. 남은 소재사업을 영위하던 기존 법인은 2014년 삼성SDI에 흡수합병됨.
삼성에버랜드는 2014년 7월 4일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변경함. 이 회사는 1954년에 세워진 제일모직과 동일한 법인이 아니며, 양도받은 패션부문을 보유한 옛 삼성에버랜드의 후신임. 2015년 5월 삼성물산과 합병을 결의하고 같은 해 7월 주주총회 승인, 9월 합병 완료로 이어짐. 회사 명칭이 같다는 이유로 1954년 법인과 2015년 합병 당사자의 법적 연혁을 혼동하지 않도록 구분해야 함.
2015년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 등은 합병비율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등을 문제 삼음. 관련 형사재판과 국제투자중재는 당사자·청구 원인·판단 기준이 서로 다름. 2025년 이재용 등의 형사재판 무죄 확정이 2026년 국제중재 환송판정의 국가책임 판단까지 부정하거나 확정하는 것은 아님. 2026년 10월 1일 발표된 환송중재 결과에서는 2015년 합병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관여와 엘리엇 측 손실의 인과관계가 인정되고 약 4,849만 달러의 배상금 및 이자 지급이 명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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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침산동 일대 약 7만 5천 평 부지에 소모방적·방모방적·직기·염색가공 설비를 갖춘 공장을 준공. 자체 기술로 완성한 국내 최초의 소모방 생산 공장으로, 국산 모직물 대량 생산의 기반을 마련. 한국 근대 섬유산업의 거점이 된 시설.
제일모직이 대구 소모방 공장에서 국산 순모 양복지 골덴텍스의 시범 생산에 착수함. 광복 이후 국내 양복지 시장을 장악하던 고가 수입 원단을 국산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의 출발점. 이후 본격 시판으로 이어지며 한국 최초의 기성 양복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계기.
편광필름을 제조하던 계열사 에이스디지텍을 흡수합병. LCD 패널 핵심 소재 사업을 강화하며 전자재료 사업의 비중을 키운 조치. 모직 기업에서 첨단 전자소재 기업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던 흐름을 보여준 합병.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2015년 5월 26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양사 합병을 결의함. 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약 0.35주의 비율로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구조로, 통합 회사의 사명은 글로벌 인지도와 삼성그룹 창업정신 승계를 고려해 삼성물산으로 결정.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절차.
2015년 7월 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각각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합병안을 가결함. 삼성물산 지분 약 7%를 보유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합병비율의 불공정을 주장하며 강하게 반대했으나,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의 찬성으로 안건이 통과됨. 이후 엘리엇·국민연금 관련 소송과 국제중재로 이어진 분쟁의 발단.
경북 경산공장을 분리해 화학섬유 전문 기업 제일합섬을 세움. 모직 중심이던 사업을 화학섬유로 넓히는 다각화의 출발점. 분리된 제일합섬은 뒷날 도레이첨단소재로 이어짐.
창립 이래 쓰던 상호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를 제일모직주식회사로 변경. 모직·섬유에서 종합 소재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의 사명 정비. 이후 1970년대 패션, 1990년대 화학, 2000년대 전자재료로 사업을 확장하는 토대.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를 삼성에버랜드에 넘김. 같은 해 12월 1일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부가 출범하며 옛 제일모직의 패션 사업이 에버랜드로 이관됨. 삼성그룹 사업 재편과 지배구조 개편의 한 단계로 평가.
삼성에버랜드가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변경해 옛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계승함. 1954년 창립 법인이 삼성SDI로 흡수된 직후,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이 옛 에버랜드 후신 기업으로 옮겨간 시점. 이 신생 제일모직이 이듬해 삼성물산과 합병의 한 축이 됨.
이병철이 "사업보국"의 경영 이념 아래 국민의 의생활 문제 해결을 목표로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를 세움. 삼성그룹이 무역에서 제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출발점이 된 모태 기업. 광복 이후 수입에 의존하던 모직물의 국산화를 내건 한국 섬유산업의 분기점.
제일모직과 합병한 통합 삼성물산이 2015년 9월 1일 합병을 완료하고 새 회사로 출범함. 옛 제일모직의 패션·리조트 부문을 계승해 상사·건설·패션·리조트 4개 부문 체제를 갖추었고,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사실상의 지주회사 성격을 띠게 됨. 삼성그룹 창업정신을 잇는 모회사로 재정립.
모직 국산 양복지 브랜드 "골덴텍스"를 출시. 수입 모직물에 의존하던 국내 양복지 시장에서 한때 약 70%를 점유한 최초의 국산 양복지. 한국 의류 소재의 자립과 제일모직의 성장을 상징한 대표 제품.
제일모직의 케미칼·전자재료 부문이 삼성SDI에 흡수합병되며 사명이 삼성SDI로 확정됨. 1954년 창립된 옛 제일모직 법인이 60년 만에 사라진 시점. 삼성그룹 소재 사업이 삼성SDI로 통합되는 재편의 마무리.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국제투자중재 환송절차에서 중재판정부가 한국 정부의 개입과 미국계 투자자 엘리엇의 손실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약 4,849만 달러의 배상금과 이자 지급을 판정함. 형사재판의 개인별 책임 판단과는 별개이며, 여기서 제일모직은 1954년 설립 법인이 아닌 2014년 삼성에버랜드가 사명을 변경한 법인을 뜻함.
제일모직의 영문 사명은 CHEIL INDUSTRIES INC.이며, 삼성그룹의 모태 기업으로 1954년 9월 이병철이 창립.
"제일모직"이라는 사명은 1954년 창립된 섬유·화학 기업(2014년 삼성SDI에 흡수)과, 2014년 삼성에버랜드가 개명한 옛 패션사업 후신 기업(2015년 삼성물산에 합병) 두 곳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