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1월 31일 미국 동부 시각에 발사된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이자 지구 방사선대 발견의 핵심 자료를 제공한 과학위성. 국제지구물리관측년의 관측 계획에서 출발했으나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국가의 과학·군사 역량을 둘러싼 냉전 경쟁의 상징이 된 우주선. 세계시로는 2월 1일 발사에 해당하며, 미국 항공우주국 NASA가 출범하기 전 미 육군 탄도미사일국과 제트추진연구소가 협력해 수행한 임무.
미국은 처음에 민간 과학 관측에 적합한 뱅가드 계획을 우선했으나, 소련의 성공 이후 육군의 축적된 로켓 기술도 위성 발사에 투입함. 익스플로러 1호는 주노 I 로켓으로 궤도에 진입했으며, 군사용 미사일에서 발전한 운반 수단과 대학 연구진의 과학 장비를 결합한 사례. 국제적인 공동 관측이라는 목표와 국가 간 기술 우위를 입증하려는 목표가 함께 작동한 사업으로, 발사 성공이 곧 모든 우주개발의 민간화를 뜻한 것은 아니라는 역사적 맥락.
질량 약 14킬로그램의 가늘고 긴 기체에 우주선 입자 검출기와 온도·미소유성 관측 장비, 송신기 등을 탑재한 설계. 제한된 크기와 전력 안에서 발사 충격과 우주 환경을 견디며 자료를 전달해야 했던 초기 위성 공학의 실험. 궤도 계산과 추적에는 연구소의 여성 계산 인력도 참여했으며, 소수 지도자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성공 뒤에 로켓·전자장비·관측·계산을 맡은 여러 집단의 협력이 존재했던 임무.
일부 궤도 구간에서 입자 계수가 거의 사라지는 현상은 처음부터 명확한 발견을 뜻하지 않았으며, 강한 방사선으로 검출기가 포화된다는 해석과 후속 익스플로러 3호 관측을 통해 지구 자기장에 붙잡힌 고에너지 입자 영역의 존재가 밝혀짐. 이른바 밴앨런대의 발견은 우주가 빈 공간이라는 단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구 주변을 동적인 물리 환경으로 이해하는 전환점. 이후 위성 전자장비와 우주비행사의 방사선 노출을 평가하고 방호 대책을 마련하는 데도 중요한 연구 기반.
1958년 5월 23일 배터리 소진으로 송신을 마쳤으나 기체 자체는 약 12년 동안 궤도에 남았다가 1970년 3월 31일 대기권에 재진입한 위성. 짧은 실제 관측 기간과 긴 궤도 잔류 기간이 구분되는 사례이며, 한 번의 발사 성공보다 후속 위성과 관측망을 통한 검증이 과학 성과를 확립한다는 점을 보여 준 임무. 수십 년 뒤의 방사선대 탐사에서도 이어진 연구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