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CI가 한국 증시를 자사 신흥시장(Emerging Markets) 지수에 편입함. 이를 통해 한국 주식시장이 글로벌 투자자가 추종하는 신흥시장 벤치마크의 구성 시장으로 자리잡음. 이후 한국은 MSCI 신흥시장 지수 내 주요 비중 국가가 되었으며, 장기적으로는 선진시장(DM) 승격 여부가 자본시장 제도의 핵심 과제로 다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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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스탠리가 캐피털 인터내셔널 계열의 글로벌 주가지수 권리를 라이선스하고, 해당 지수들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브랜드를 붙임. MSCI World Index는 1986년 3월 31일 출시되었으며, 출시 이전 구간의 성과는 백테스트 자료로 제시됨. 이후 MSCI 지수는 미국 외 시장과 글로벌 주식시장을 측정하는 대표 벤치마크로 자리잡음.
캐피털 인터내셔널이 미국 외 글로벌 주식시장을 포괄하는 주가지수 계열을 발표함. 국제 분산투자가 확산되던 시기에 비미국 시장을 측정할 벤치마크가 마련됨. 이 지수 계열은 훗날 모건스탠리의 라이선스와 MSCI 브랜드 도입을 거쳐 MSCI 글로벌 주식지수의 기원이 됨.
조선총독부가 1938년 1월부터 각 신문과 잡지에 황국신민서사를 게재하게 함. 황국신민서사는 조선인을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편입하려는 황민화 정책의 상징적 맹세문. 매일신보를 비롯한 조선어 지면은 이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며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선전의 통로로 기능.
매일신보가 1943년 12월 7일 「지원 안한 학도 징용, 5일 훈련소에 일제히 입소」 기사를 게재함. 학도지원병제에 응하지 않은 조선인 학생들이 징용 대상으로 처리되는 상황을 보도. ‘지원’이라는 형식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관헌의 압력과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조선인 학생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한 국면에서 학병 지원자를 진정한 국민으로, 미지원자를 비국민, 낙오자로 대비시키며 학병 동원 담론을 만들어낸 것으로 분석됨.
광복 직후 사원자치위원회가 매일신보 발행을 이어가던 가운데, 1945년 10월 2일 미군정청이 매일신보사를 접수함. 이후 오세창 등 새 간부진을 중심으로 신문사가 재편되고, 매일신보는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꿔 발행되는 방향으로 정리됨.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가 해방 직후 새 언론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
매일신보가 1919년 3월 7일 3·1운동 관련 보도를 내며 이를 ‘소요사건’으로 다룸. 당시 전국에서 벌어진 독립만세운동의 상황을 일부 전하면서도, 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총독부 기관지의 시각으로 해석. 조선어 유일 일간지였던 매일신보가 식민 통치의 선전 매체로 기능한 사례.
광복 후 매일신보사에 사원자치위원회가 조직되어 신문 발행을 이어가다가, 1945년 10월 2일 미군정이 매일신보사를 접수함. 미군정은 주주 대표와 사원자치위원회와의 조정을 거쳐 오세창을 사장으로 하는 새 간부진을 구성. 새 간부진은 1945년 11월 23일부터 제호를 서울신문으로 바꾸고 지령을 이어 속간함.
총독부가 한국어 신문에 대해서는 매일신보 하나만 남긴다는 방침 아래 1940년 1월부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폐간을 압박함. 두 신문은 총독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1940년 8월 10일 동시에 폐간. 이로써 1920년 문화정치 이후 이어지던 민간 조선어 신문 발행이 끊기고, 매일신보가 일본 패망 때까지 조선어 일간지 지면을 사실상 독점.
이광수가 1940년 2월 20일 『매일신보』에 「창씨와 나」를 게재함.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을 지지함. 황민화운동과 내선일체를 선전한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
1938년 4월 29일 매일신보가 경성일보사에서 분리·독립하며 주식회사 매일신보로 재편. 이와 함께 한자 제호를 종전 每日申報에서 每日新報로 변경. 경성일보 편집국 산하에 예속되어 있던 조선어 기관지가 별도 회사 조직을 갖추며 총독부 기관지로서의 운영 체제 재정비.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정치를 내세우며 조선인의 한글 신문 발행을 제한적으로 허용함. 19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민간 조선어 신문이 창간되면서 1910년대 내내 유지되던 매일신보의 조선어 신문 독점 구도 종료. 이후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남되, 민간 조선어 신문들과 병존하는 언론 구도 속에 위치.
통감부가 1909년 발행인 어니스트 베델의 사망 뒤 대한매일신보 매수를 추진하고, 1910년 5월 신문을 장악함. 한일병합조약 공포 다음 날인 1910년 8월 30일 대한매일신보에서 ‘대한’을 떼고 제호를 매일신보로 변경. 한말 항일 민족지가 조선총독부의 한국어 기관지로 전환된 상징적 사건.
NASA 과학시각화스튜디오가 1880년 이후 월별 전 지구 기온 편차를 나선형으로 보여주는 ‘기후 나선’ 시각화를 공개. 1951~1980년 평균을 기준선으로 삼아 각 달의 기온 편차를 원형 궤적과 색상 변화로 표현한 자료.
코인베이스가 영국에서 MiFID 기반 투자서비스 인가를 취득. 이를 통해 영국 이용자가 암호화폐와 함께 파생상품·주식 거래를 하나의 계정과 플랫폼에서 이용할 수 있는 기반 마련. 코인베이스가 암호화폐 거래소를 넘어 전통 금융상품까지 포괄하는 ‘Everything Exchange’ 전략을 확장한 사건.
코인베이스가 암호화폐 옵션 거래소 데리빗(Deribit) 인수를 완료. 데리빗은 비트코인·이더리움 옵션 거래에서 강한 입지를 가진 글로벌 파생상품 거래소로, 인수 완료 시점에 코인베이스의 선물·무기한 선물 사업과 결합. 현물 거래 중심 기업에서 글로벌 암호화폐 파생상품 플랫폼으로 확장한 이정표.
코인베이스가 나스닥 글로벌 셀렉트 마켓에 티커 COIN으로 직상장. 투자은행 인수 없이 기존 주주와 임직원이 주식을 직접 시장에 내놓는 방식으로, 미국 주요 거래소에 상장한 첫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사례. 상장 직후 한때 시가총액이 1천억 달러에 근접하며 암호화폐 산업의 제도권 편입을 상징한 사건.
코인베이스가 미국 외 적격 관할권의 기관 이용자를 대상으로 코인베이스 인터내셔널 익스체인지를 출시. 초기에는 비트코인·이더리움 무기한 선물 거래를 제공하며, 미국 규제 환경 밖의 글로벌 파생상품 시장 진출을 본격화. SEC 제소 직전 코인베이스의 해외 확장 전략을 엿볼 수 있음.
코인베이스가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암호자산 보관 서비스 코인베이스 커스터디를 공식 출범. 헤지펀드·거래소·ICO 팀 등 기관 고객을 대상으로 안전한 보관 인프라를 제공하는 서비스. 개인 거래 중심 서비스에서 기관 금융 인프라로 확장한 이정표.
코인베이스가 암호화폐 보상형 작업 서비스 Earn.com을 인수. Earn.com 공동창업자 겸 CEO 발라지 스리니바산이 코인베이스의 첫 최고기술책임자로 합류. 제품 확장 자체보다 핵심 인재 영입과 기술 리더십 강화의 성격이 강한 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