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제휴 10주년에 맞춰 2010년 합병을 완료하고 P.S.1 현대미술센터를 'MoMA PS1'로 공식 개칭함. 롱아일랜드시티의 현대미술 거점을 MoMA 체제에 통합. 근대미술관과 현대미술 현장을 잇는 자매 기관 관계를 제도적으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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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0일 일본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의 설계로 면적을 약 2배(63만 ft²)로 넓힌 증축을 마치고 설립 75주년에 맞춰 재개관함. 8억 5,800만 달러 규모의 모금으로 진행됐고 데이비드 록펠러가 현금 7,700만 달러를 기부. 다만 성인 입장료가 12달러에서 20달러로 올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관 입장료로 상업화 비판을 받음.
2000년 전문·행정직원 노조 PASTA(UAW Local 2110) 소속 약 250명이 단체협약 협상 중 134일간 파업에 들어감. 노조 안정 조항(agency shop) 확보를 핵심 쟁점으로 9월 9일 합의로 마무리. 미술관 노동 환경과 직원 처우를 둘러싼 갈등을 드러낸 대표적 노동 쟁의.
뉴욕 현대미술관과 P.S.1 현대미술센터가 기관 차원의 제휴·통합 계획을 발표함. 양측은 약 10년에 걸친 통합 절차를 통해 P.S.1의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MoMA의 기획, 홍보, 회원, 출판, 모금 역량을 결합하기로 함. 이 제휴는 2000년 1월 공식화됐고, 이후 P.S.1은 MoMA의 현대미술 실험 공간으로 자리 잡음.
1984년 윌리엄 루빈과 커크 바네도가 기획해 근대 거장의 작품과 아프리카·오세아니아 부족미술 약 200점을 나란히 전시함. 비서구 미술을 맥락·의미를 지운 채 모더니즘에 끼친 '영향'으로만 다뤘다는 형식주의·서구중심주의 비판을 받음. 토머스 매커블리의 비평 등으로 미술 제도의 식민주의적 시각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
1984년 건축가 시저 펠리의 설계로 갤러리 면적을 약 2배로 넓힌 증축을 완료함. 미술관 위로 주거용 고층 건물 '뮤지엄 타워'를 함께 올려 그 분양 수익으로 확장 자금을 충당. 미술관이 부동산 개발과 결합한 운영 모델을 선보인 사례이자, 조각 정원에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비판도 받음.
큐레이터 윌리엄 루빈이 기획해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며 53번가 본관 전체를 단일 작가에게 할애한 사상 첫 전시. 100만 명 이상이 찾아 보안 인력을 대폭 늘리고 온습도 조절용 급수탑까지 증설할 정도의 대성공. 미술관 '블록버스터 전시' 시대를 연, 미술관 운영의 상업화·대중화를 상징하는 전시.
1969년 미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과 함께 베트남전 미라이 학살을 고발하는 반전 포스터 《And Babies》를 제작·배포하기로 했으나, 완성된 포스터를 본 뒤 막판에 자금 지원을 철회함. 미술관의 정치적 보신주의를 둘러싼 비판을 불러온 사건으로, 미술 기관과 사회·정치적 책임의 긴장을 드러냄.
1958년 4월 15일 2층에서 에어컨 설치 작업 중 시작된 화재로 약 5.5m 길이의 모네 《수련》이 소실됨. 작업자 1명이 숨지고 여러 소방관이 연기를 들이마셔 치료를 받음. 3·4층의 작품들은 인접한 휘트니 미술관으로 대피시킨, 미술관 안전사에 남은 사건.
사진부장 에드워드 스타이컨이 68개국에서 모은 사진 503점으로 인류 보편의 삶을 주제로 기획함. 전 세계를 8년간 순회하며 9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사진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전시 중 하나. 200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
1941년 릴리 P. 블리스 유증 기금으로 반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1889)을 입수함. 미술관 컬렉션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소장품 중 하나가 됨. 설립 후원자의 유증이 어떻게 영구 컬렉션의 핵심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보몬트 뉴홀이 1940년 사진을 독립된 예술로 다루는 부서를 세움. 이후 에드워드 스타이컨(1947–1961)·존 자코우스키(1962–1991) 등이 이끌며 세계 최고 수준의 사진 컬렉션으로 성장. 사진을 미술관 미술의 정식 영역으로 끌어올린, 사진사적으로 중요한 제도화.
초대 관장 바가 주도하고 시카고 미술관과 공동으로 피카소 40년의 작업을 망라함. 피카소를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자리매김시키며 이후 MoMA 회고전의 전형을 세움. 한 작가에 대한 재해석을 제도적으로 각인시킨, 국제적 주목을 받은 전시.
필립 굿윈과 에드워드 듀렐 스톤이 국제 양식으로 설계한 53번가 신축 건물을 1939년 5월 10일 개관함. 백색 대리석과 유리 외벽의 6층 건물로, 주변 타운하우스들과 뚜렷이 대비되는 모더니즘 건축. 개관식에는 6,000여 명이 모였고 백악관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라디오로 축사를 보낸, 미술관의 현 위치 정착을 알린 사건.
공동 설립자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의 아들 넬슨 록펠러가 1939년 30세에 회장으로 취임함. 화려한 추진력으로 미술관의 홍보·작품 수집·신관 확장을 주도. 1932년부터 이사로 관여했고 1946–1953년 다시 회장을 맡았으며, 훗날 뉴욕 주지사와 미국 부통령을 지낸 인물.
초대 관장 바가 기획해 추상미술의 흐름을 통사적으로 정리함. 도록 표지에 후기인상주의에서 여러 '이즘'으로 갈라지는 추상미술의 계보를 그린 '바의 다이어그램'을 실어, 근대미술을 선형적 계보로 서술하는 관점을 제시. 같은 해 《환상미술, 다다, 초현실주의》전과 더불어 MoMA식 근대미술 narrative를 각인시킨 전시.
1935년 미국 미술관 최초로 영화를 수집·연구·상영하는 부서를 세움. 제작자 존 헤이 휘트니가 초대 위원장을, 영화비평가 아이리스 배리가 초대 큐레이터를 맡아 약 8천 편의 컬렉션을 구축. 영화를 정식 예술 장르로 다룬 선구적 시도로, 1937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표창을 받음.
헨리-러셀 히치콕과 필립 존슨이 기획해 1920년대 유럽 모더니즘 건축을 소개함. 이 전시에서 '국제 양식(International Style)'이라는 용어가 처음 공식화되어 건축 사조로 정착. 같은 해 세계 최초의 미술관 건축·디자인부가 신설되어, 건축과 디자인을 미술관의 정식 수집 영역으로 끌어들인 분기점.
공동 설립자이자 손꼽히는 근대미술 수집가였던 블리스가 1931년 세상을 떠나며 세잔·쇠라·고갱 등 약 150점을 미술관에 유증함. 이 '릴리 P. 블리스 유증'은 MoMA 영구 컬렉션의 핵심 토대가 됨.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도 훗날 이 유증 기금으로 입수된, 미술관 소장품 형성의 결정적 계기.
개관과 함께 후기인상주의 거장 4인의 작품만으로 첫 전시를 구성함. 전적으로 대여 작품으로 꾸려졌고 47,293명이 관람하며 큰 호응을 얻음. 동시대 화가들이 특히 존경한 화가들을 골랐다는 초대 관장 바의 기획 의도가 드러난, 미술관의 방향을 예고한 첫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