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매제스틱 극장에서 브로드웨이 공연이 정식 개막함. 런던 초연의 마이클 크로퍼드와 사라 브라이트먼이 각각 유령과 크리스틴으로 참여했으며, 런던에서 시작된 제작이 미국의 장기 공연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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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시드먼턴 페스티벌에서 개발 중인 《오페라의 유령》의 첫 막을 선보임. 콜름 윌킨슨과 사라 브라이트먼 등이 참여했으며, 완성된 상업 공연에 앞서 음악과 극의 흐름을 시험하는 단계였음.
극단 시키가 도쿄 닛세이 극장에서 일본어판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공연함. 영어권의 성공을 그대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언어로 배우와 관객을 만나는 제작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일본 내 여러 도시의 장기 공연으로 이어짐.
싱가포르에서 국제 투어가 시작되어 이후 중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으로 이어짐. 개별 도시의 장기 공연과 이동형 투어가 병행되면서 작품의 해외 확산 방식이 다양해짐.
사라 브라이트먼과 스티브 할리가 부른 제목 곡이 싱글로 발매됨. 아직 극장 공연이 개막하기 전 음악을 먼저 대중에게 소개한 사례이며, 싱글의 유령 역과 이후 런던 초연의 유령 역은 서로 달랐음.
뉴욕 매제스틱 극장의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이 마지막 공연을 올림. 1988년 정식 개막 이후 35년 넘게 이어진 정규 공연 횟수는 13,981회였음. 이는 브로드웨이 제작의 종료이며, 런던 공연과 다른 지역의 제작까지 모두 끝난 것은 아님.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세 번째 한국어 공연이 시작됨. 2009년 이후 13년여 만에 돌아온 한국어 제작으로, 조승우·최재림·김주택·전동석 등이 유령 역에 참여함. 이후 서울 공연으로 이어졌으며, 가사를 보다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위한 번역 조정도 이루어짐.
‘한다 오페라 온 시드니 하버’ 프로그램을 통해 시드니항의 수상 무대에서 특별 제작을 선보임. 사이먼 필립스가 연출하고 조슈아 롭슨과 조지나 홉슨 등이 출연했으며, 실내 극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야외의 도시 풍경 속에서 다시 구현함.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했던 런던 공연이 다시 관객을 맞음. 휴연 기간에는 무대 공간과 프로시니엄, 박스석, 오케스트라 피트 등을 손보았으며, 공연 재개는 장기 흥행작도 극장 운영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줌.
한국 공연의 누적 관객이 100만 명을 넘어섬. 2001년 한국어 초연 이후 한국어 공연과 내한 공연을 거치며 쌓인 관객 수이며, 한 차례의 공연만으로 달성한 기록은 아님. 당시에는 2012년 12월 개막한 내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음.
플리머스를 출발점으로 새롭게 제작한 영국 투어를 시작함. 이 제작은 2013년 미국 투어로도 이어졌으며, 오래 유지된 원래 프로덕션 외에도 같은 음악과 이야기를 다른 무대 구성으로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줌.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첫 한국어 공연이 시작됨. 이듬해 6월까지 이어진 약 7개월의 장기 공연은 대형 해외 뮤지컬을 한국어로 제작해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관객 기반을 보여줌. 이후 국내 뮤지컬 시장의 확대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전환점이 됨.
《오페라의 유령》, 브로드웨이 역대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움
브로드웨이에서 7,486번째 공연을 올려 《캐츠》가 보유하던 7,485회 기록을 넘어섬. 이 기록은 세계 모든 공연의 합계가 아니라 브로드웨이의 해당 프로덕션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이후 2023년 종연까지 기록을 계속 늘림.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10월 1일과 2일 초연 25주년 특별 공연을 개최함. 라민 카림루와 시에라 보게스 등이 출연했으며, 원래 장기 공연장의 일상적인 무대와 구별되는 기념 제작으로 작품의 역사를 기념함.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두 번째 한국어 공연이 시작됨. 2001년 초연 이후 8년 만의 한국어 무대였으며, 내한 공연과 구별되는 국내 배우들의 장기 공연으로 작품을 다시 소개함.
제42회 토니상에서 최우수 뮤지컬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연출상, 무대디자인상, 의상디자인상, 조명디자인상을 받음. 배우의 연기뿐 아니라 연출과 시각적 제작까지 함께 인정받았으며, 마리아 비외른손은 무대와 의상 두 부문을 수상함.
바이온트 댐 참사 발생
밤 10시 39분경 토크산의 거대한 사면이 바이온트 저수지로 미끄러져 내려와 물을 밀어 올림. 파도는 저수지 주변 마을을 덮치고 댐을 넘어 하류 롱가로네 일대를 파괴하여 약 2천 명의 목숨을 앗아감. 댐 본체는 남아 있었으므로 ‘댐 붕괴’로 설명하면 재난의 원인을 잘못 이해하게 됨. 지질 위험의 평가와 운영 판단, 주민 대피가 왜 실패했는지가 이후 책임 규명의 중심이 되었음.
관람객의 망치 공격으로 다비드 발 부분 훼손
미술관 안에서 한 관람객이 망치로 《다비드》의 왼발을 공격해 손상을 입힘. 실내로 옮겨 풍화의 위험을 줄인 뒤에도 의도적인 훼손이라는 별도의 위험이 남아 있음을 드러낸 사건임.
관객이 작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일과 원작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 사이의 긴장이 나타남. 조각의 보존에는 자연적인 노화 관리뿐 아니라 전시 공간의 안전 확보도 필요함을 보여 줌.
안토니오 로셀리노의 대리석 재작업 시도
안토니오 로셀리노가 앞서 가공한 대리석을 다시 맡았으나 작품을 완성하지 못함. 대성당 측 기록에 나타나는 두 번째 제작 시도였음.
재료의 형태와 기존의 절삭 흔적은 다음 조각가가 선택할 수 있는 표현의 범위를 제한했음. 1501년 미켈란젤로가 맡은 작업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해야 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새 조각을 만드는 것 이상의 어려움을 지니고 있었음.
미켈란젤로에게 다비드 제작 의뢰
피렌체 대성당 관리 기관이 스물여섯 살의 미켈란젤로에게 대형 대리석 인물상 제작을 맡김. 이미 다른 조각가들이 작업한 돌을 활용해 성서 속 다비드를 표현하는 의뢰였음.
원래 목적은 대성당 외부의 높은 위치에 조각을 설치하는 것이었으므로, 오늘날 미술관 바닥에서 감상하는 환경과는 다른 시점을 전제로 한 기획임. 미켈란젤로는 남아 있던 재료의 제약을 극복하며 작업을 이어 갔고, 1504년 작품을 완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