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발표한 정규 13집으로, 꿈을 주제로 한 곡들을 담음. 발라드와 서정적 멜로디를 중심으로 1990년대 초 그의 음악 색깔을 보여 줌. 변화하는 가요계 속에서도 꾸준히 정규 음반을 발표한 시기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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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발표한 정규 12집으로, 새로운 사운드를 표방한 음반. 1990년대 들어 대중음악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의 작품. 다양한 편곡과 시도가 담김.
이별의 정서를 담은 〈Q〉를 타이틀로 1989년 발표한 정규 음반(발매 당시 음반 표기는 '조용필 제10집 Part.II'). 〈Q〉는 애절한 멜로디로 큰 사랑을 받으며 1980년대 말을 대표하는 발라드가 됨. 1980년대를 마무리하는 그의 대표 히트곡 중 하나.
〈서울 서울 서울〉과 〈모나리자〉를 앞세워 1988년 발표한 정규 10집.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도시적 세련미를 담은 사운드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함. 〈모나리자〉는 강렬한 록 사운드로 또 하나의 대표곡이 됨.
타이틀곡 〈마도요〉와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를 담은 1987년 정규 9집. 자신의 회사 필 컴퍼니를 통해 제작에 더 깊이 관여하기 시작한 음반. 원숙해진 보컬과 다양한 편곡 실험이 돋보임.
〈허공〉·〈킬리만자로의 표범〉·〈그 겨울의 찻집〉·〈바람이 전하는 말〉 등 명곡이 한꺼번에 담긴 1985년 정규 8집. 한 음반에 시대를 대표하는 히트곡을 여러 곡 수록해 그의 음악적 절정을 보여 준 작품. 발라드·내레이션·록을 넘나드는 폭넓은 표현으로 '가왕'의 위상을 굳힘.
경쾌한 〈여행을 떠나요〉와 〈그대여〉, 故 유재하가 만든 〈사랑하기 때문에〉를 수록한 1985년 정규 7집. 〈여행을 떠나요〉는 지금도 나들이·축제에서 즐겨 울리는 대표적 응원가.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폭넓은 세대의 호응을 얻음.
타이틀곡 〈눈물의 파티〉를 비롯해 여러 곡을 담은 1984년 정규 6집. 도시적 감성의 발라드와 댄스 리듬을 폭넓게 시도한 음반. 매년 정규 음반을 쏟아내던 1980년대 다작 전성기의 한 장.
장중한 발라드 〈친구여〉와 〈산유화〉·〈황진이〉를 수록한 1983년 정규 5집. 〈친구여〉는 졸업식·송별 자리에서 즐겨 불리는 국민적 애창곡으로 자리 잡음. 한국적 정서를 담은 가곡풍 발라드의 대표작.
타이틀곡 〈못찾겠다 꾀꼬리〉와 〈비련〉을 담아 1982년 발표한 정규 4집. 〈못찾겠다 꾀꼬리〉는 그해 가요 시상식을 휩쓸며 1980년대 초 조용필 전성기를 상징하는 곡이 됨. 경쾌한 리듬과 서정적 발라드를 함께 담아 폭넓은 사랑을 받음.
동요풍 히트곡 〈고추잠자리〉와 〈일편단심 민들레야〉·〈물망초〉를 수록한 1981년 정규 3집. 〈고추잠자리〉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폭넓게 사랑받으며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음.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던 초기 행보를 보여 주는 음반.
TBC 드라마 주제가 〈축복(촛불)〉을 타이틀로 1980년 말 발표한 정규 2집. 데뷔작의 성공을 이어 가며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시키던 전성기 초입의 음반. 발라드와 드라마 주제가로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함.
〈창밖의 여자〉·〈단발머리〉·〈한오백년〉·〈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담아 1980년 발표한 솔로 정규 데뷔 음반. 대한민국 최초로 100만 장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 단일 음반으로 기록됨. 트로트·발라드·록·민요를 한 장에 아우르며 '가왕' 시대의 막을 연 명반.
2020년 2월 16일 캘리포니아 포톨라밸리에서 향년 74세로 별세. 잘라내기·복사·붙여넣기와 모드 없는 인터페이스로 오늘날 모두가 쓰는 사용자 경험의 토대를 놓은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의 선구자. 컴퓨터역사박물관은 그를 "컴퓨터는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반문화적 비전을 컴퓨터 과학과 결합한 인물"로 기림.
1997년 애플을 떠나 교육용 프로그래밍 도구 회사 Stagecast를 공동 창업한 뒤, 2001년 10월 아마존에 합류해 쇼핑 경험 담당 부사장으로 웹 인터페이스와 책 미리보기 기능을 개선. 이후 야후 등에서도 사용자 경험 분야 임원으로 일하며 평생 사용성을 다듬은 행보.
1980년 7월 제록스를 떠나 애플에 합류해 Lisa 개발을 지원. 이후 Object Pascal과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 MacApp 같은 객체지향 도구를 개발하고 AppleNet·첨단기술그룹 부사장과 수석과학자(Chief Scientist)를 거치며 1997년까지 재직. 복잡성을 플랫폼·도구가 떠안게 하려는 지향이 제품 개발로 이어진 시기.
1979년 말 스티브 잡스의 두 차례 PARC 방문 중 테슬러가 마우스로 구동되는 Alto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Smalltalk, Gypsy를 직접 시연. 잡스가 GUI의 잠재력을 확신하고 돌아가 애플 Lisa와 매킨토시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이어진 역사적 장면.
Jon Yablonski가 오라일리에서 펴낸 『Laws of UX』 9장에서 테슬러의 복합성 보존의 법칙을 'Tesler's Law'라는 이름의 핵심 UX 원칙으로 정리·대중화. 테슬러 별세(2020년 2월) 두 달 뒤 출간되어 그의 통찰이 디자인 분야의 표준 언어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줌. 앞서 댄 새퍼의 『Designing for Interaction』(2010)도 이 법칙을 소개.
1995년 무렵 자신의 차량에 'NOMODES'라는 캘리포니아 맞춤 번호판을 달고 "Don't Mode Me In"을 구호로 삼으며 모드 없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평생의 신념을 드러냄. 개인 웹사이트 주소도 nomodes.com. 사용자에게 모드라는 복잡성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그의 철학을 상징하는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