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퀘이커봉사회, 함석헌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미국 퀘이커봉사회(AFSC)가 함석헌을 197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함. 1947년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단체인 AFSC가 행사한 추천으로, 1985년에도 함석헌을 다시 추천함. 한국의 비폭력·민주화 운동가가 국제 평화운동의 추천을 받은 사례. 추천 자체는 노벨위원회의 지지나 수상자 선정과 구별되는 절차이며, 함석헌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않음.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미국 퀘이커봉사회(AFSC)가 함석헌을 197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함. 1947년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단체인 AFSC가 행사한 추천으로, 1985년에도 함석헌을 다시 추천함. 한국의 비폭력·민주화 운동가가 국제 평화운동의 추천을 받은 사례. 추천 자체는 노벨위원회의 지지나 수상자 선정과 구별되는 절차이며, 함석헌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않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들이 교수회의에서 대학의 자율성 보장, 시설 확충,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채택하고 한심석 총장에게 제출한 사건. 교련 강화와 정부의 학원 통제 속에서 교수들의 대학 운영 참여와 연구 여건 개선을 함께 요구한 움직임.
다른 단과대학의 결의가 이어졌으며, 8월 23일 서울대 교수협의회 임시총회는 대학 자주성의 제도적 보장과 연구비 확충 등을 담은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함. 이후 전국 국공립대학 교수들의 대학자주화 요구로 확산되었으나 정부의 실질적 대응은 제한적이었음.
수원에 자리했던 농업생명과학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함. 1975년 종합화 때 수원에 남았던 농학 계열이 관악의 다른 학문 분야와 교육·연구 공간을 함께 쓰게 된 변화.
오랜 수원캠퍼스 시대를 마무리하면서 관악을 중심으로 한 대학 통합이 한 단계 더 진행됨.
서울대학교 자연대 학생회장 김세진과 반전반핵평화옹호투쟁위원장 이재호가 신림사거리 부근 서광빌딩 옥상에서 전방입소 의무군사교육에 반대하며 분신한 사건. 교문이 폐쇄되자 학생들은 신림사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였으며, 두 사람은 인근 건물에서 군사교육 거부와 반전·반핵을 주장함.
두 사람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김세진은 5월 3일, 이재호는 5월 26일 사망함. 사건은 전방입소 거부운동과 반미운동이 전국 대학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음.
전쟁 중 부산에서 운영되던 대학본부와 문리과대학이 서울로 복귀함. 피난지의 임시 교육 체제를 마무리하고 피해를 입은 교사와 교육·연구 시설을 복구해 가는 전후 재건의 시작.
지역과 학교에 따라 달라지는 교육 여건을 고려하고 학생 선발의 폭을 넓히기 위해 2005학년도부터 지역균형선발전형을 도입하기로 확정함. 수능 성적 중심 선발을 보완하고 학교 교육과 학생의 잠재력을 함께 평가하려는 입시 개편.
학교장 추천을 통한 지원 경로가 마련되면서, 교육 기회의 형평성과 입학자 구성의 다양성을 높이려 한 입시 개편.
강원도 평창에 농업·생명과학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위한 캠퍼스를 준공함.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과 국제농업기술대학원 등을 통해 종자·식품·축산 등 농생명 연구와 산업화를 연계하는 거점으로 발전.
관악 중심의 캠퍼스 체계를 지역의 넓은 실험·실증 공간으로 확장한 사례.
서울 시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단과대학들의 관악캠퍼스 이전이 시작됨. 같은 해 문리과대학을 인문대학·사회과학대학·자연과학대학으로 나누고 경영대학을 신설하는 학제 개편이 이루어졌으며, 3월 관악에서 첫 입학식을 개최함.
의과대학·치과대학 등은 연건에, 농학 계열은 수원에 남겨 둔 채 주요 교육·연구 공간을 관악에 모은 종합화. 중앙도서관 등 공동 시설을 함께 이용하고 학문 간 교류를 확대할 공간적 토대를 마련함.
1987~2001년을 대상으로 한 장기발전계획을 발표하고 국제적 수준의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발전한다는 방향을 제시함. 대학원 교육과 연구의 강화, 학부 교육체제의 개편, 대학의 자율화가 함께 논의된 변화.
학부 전문인력 양성과 함께 학문 후속세대와 연구자를 기르는 기능을 대학 발전의 중심에 놓은 계획.
한국전쟁으로 서울에서 정상적인 대학 운영이 어려워지자 부산에서 전시연합대학의 연합강의 방식으로 수업을 이어감. 전쟁 중 교육이 끊기지 않도록 여러 대학의 인력과 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한 운영 방식.
서울대는 피난지에 단과대학별 임시 교사를 마련했으며, 1952년 전시연합대학 체제가 해체된 뒤에도 부산에서 독자적으로 강의를 계속함.
서울과 수원 등지에 분산된 교육·연구 조직을 통합하기 위한 종합화 10개년 계획이 확정됨. 단과대학들이 별도로 운영되던 한계를 줄이고 학문 간 교류가 가능한 종합대학 체계를 갖추려는 계획.
관악산 서북 지역이 새 캠퍼스 부지로 선정되었으며, 1971년 관악캠퍼스 기공과 1975년 이전으로 이어짐.
교수들의 직접선거를 거쳐 선출된 김종운이 제19대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함. 교수들의 직접투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을 도입한 첫 사례. 정부의 공식 임명 절차에 앞서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한 변화.
대학 자율성과 학내 민주화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대학 운영 제도의 변화로 이어진 전환점.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한국문화연구소가 통합되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출범함. 고문헌과 역사자료의 보존·관리 기능을 한국학 연구, 출판, 교육, 국제교류와 결합한 조직 개편.
자료를 보관하는 일과 자료를 해석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을 함께 수행하며 한국학의 학제 간 연구 기반을 강화함.
미국의 원조와 미네소타대학교의 협력으로 서울대의 교육·연구 역량을 재건하는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공식 출범함. 교수 연수, 외국 자문단 파견, 건물 복구와 실험·도서 장비 지원을 함께 추진한 사업.
농학·공학·의학에서 출발한 지원은 행정학·수의학·간호학·보건학 등으로 확대됨. 1955~1962년 교수 218명이 미국에서 연수하면서 새로운 교육 방법과 연구 체계를 도입하는 기반을 마련함.
공통핵심역량과 융합교육을 강화하고 글로벌 교육을 확대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학부대학이 공식 출범함. 개별 전공의 경계를 넘어 학부생들이 공통으로 갖춰야 할 역량과 전공 학습의 기초를 함께 기르려는 교육 개편.
관악캠퍼스 종합화 50주년을 맞아 교육 공간의 통합에서 학문 간 교육과정의 연결로 변화의 범위를 넓힌 사례.
서울대학교 도시공학과 학생 황정하가 교내 시위를 준비하던 중 도서관에서 추락해 중상을 입은 사건. 당시 학생들은 전두환 정권의 학원 탄압과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방한 등에 반대하는 시위를 추진하고 있었음.
황정하는 치료를 받다가 11월 16일 사망함. 이후 서울대 민주화운동 과정의 희생으로 추모되어 온 사례.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와 시위 탄압에 항의하는 학생·시민의 대규모 시위가 서울과 부산·광주 등 전국으로 확산된 사건. 마산의 유혈진압, 4월 11일 김주열의 시신 발견,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에 대한 정치폭력배의 습격이 항의 확산의 배경.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과 도시 노동자·빈민 등 여러 계층이 참여한 저항.
서울대학교 학생들도 각 단과대학에서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했으며, 경찰의 발포로 서울대생 6명이 목숨을 잃음. 전국적으로 경찰의 실탄 발포에 따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정부는 주요 도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함. 이승만이 승인한 계엄의 효력은 실제 선포 이전의 경찰 발포 시점까지 소급 적용됨. 대통령의 계엄 승인과 경찰 지휘부·현장 경찰의 구체적인 발포 책임은 구별되는 문제.
계엄 이후에도 항의가 계속되어 4월 25일 교수단 시위와 26일 이승만의 하야 발표로 이어짐. 국가의 유혈진압에 따른 희생 속에서 국민의 선거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 저항이 장기집권 체제를 무너뜨린 전환점.
네이버 웹툰 사업의 미국 모회사 웹툰 엔터테인먼트가 종목코드 WBTN으로 나스닥시장 거래 시작. 한국 포털의 웹툰 서비스로 출발한 사업이 글로벌 콘텐츠 기업으로 미국 공개 자본시장에 진입한 이정표. 상장 공모가격은 주당 21달러이며, 다음 날인 6월 28일에는 공모 절차 종결.
네이버가 웹툰 사업을 전담하는 네이버웹툰 주식회사 설립. 포털 내부 서비스로 성장한 웹툰을 별도 조직으로 운영하며 해외 서비스와 창작자 지원, 콘텐츠 사업을 확대할 기반 마련. 2004년 서비스 개시 이후 이어진 웹툰 사업의 법인 분리 단계.
네이버가 웹툰 정식 서비스 시작. 정해진 요일마다 작품을 연재하는 방식과 아마추어 작가가 정식 연재에 도전하는 구조를 발전시키며 온라인 만화의 창작·유통 기반 확대. 이후 모바일 감상, 해외 서비스, 영상화 등 지식재산 활용으로 이어진 콘텐츠 사업의 출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