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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투어 리허설 뒤 지미 페이지의 자택에 머물던 중 잠든 채 9월 25일 오후 숨진 상태로 발견. 검시 결과 질식에 의한 사고사로 판정됐으며 32세로 사망. 밴드 사운드의 핵심이던 드러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예정된 북미 투어가 취소되고 활동이 중단됨.

레드 제플린

스웨덴 폴라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8집을 스완 송 레코드로 발매. 존 폴 존스의 신서사이저·키보드 비중이 크게 늘고 라틴 리듬과 팝적 편곡이 도입되어 이전 앨범들과 뚜렷이 다른 질감을 형성. 여섯 종의 서로 다른 커버를 갈색 종이봉투에 넣어 유통한 패키지로도 화제를 모으며 미국·영국 차트 1위 기록.

레드 제플린

아들을 잃은 뒤 약 2년, 영국 공연으로는 4년 만에 네브워스 하우스 야외 무대에 복귀. 8월 4일과 11일 두 차례 헤드라이너로 출연함. 결과적으로 해체 전 밴드가 영국에서 가진 마지막 공연으로 남음.

레드 제플린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던 중 로버트 플랜트가 다섯 살 아들 카락이 위장 질환으로 숨졌다는 소식을 접함. 남은 미국 일정 열 차례 공연이 전면 취소되며 밴드는 2년 가까이 무대에 서지 않음. 직전 오클랜드 공연이 결과적으로 미국에서의 마지막 무대가 되며 활동 후반기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남음.

오클랜드 앨러미다 카운티 콜리시엄의 ‘데이 온 더 그린’ 공연 뒤 프로모터 빌 그레이엄 측 직원이 백스테이지에서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함. 이후 매니저 피터 그랜트, 드러머 존 본햄, 투어 매니저 리처드 콜, 경호원 존 빈던이 사건과 관련해 체포됨. 밴드는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공연했으나 이후 미국에서 다시 공연하지 않음.

레드 제플린

플랜트의 부상 회복 기간에 단기간 집중 작업으로 완성한 7집을 발매. 어쿠스틱·건반 편성을 덜어내고 기타 중심의 건조한 사운드를 택했으며 10분 길이의 〈Achilles Last Stand〉가 대표 트랙. 투어 없이 발표된 앨범으로 밴드 후반기의 불안정한 상황이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

레드 제플린

그리스 로도스섬에서 휴가 중 타고 있던 차량이 도로를 이탈하는 사고로 플랜트와 가족이 다침. 플랜트는 발목과 팔꿈치 등에 중상을 입었고 아내 모린도 크게 다쳐 예정된 투어가 연기됨. 장기간 회복하는 동안 다음 앨범 《Presence》 작업이 진행됨.

스완 송 레코드의 첫 자사 발매작으로 두 장 구성의 6집을 미국에서 출시. 신곡과 이전 세션의 미발표 트랙을 함께 실어 〈Kashmir〉·〈Trampled Under Foot〉·〈In My Time of Dying〉 등 폭넓은 스타일을 한 앨범에 집대성. 발매 직후 미국·영국 차트 1위에 올라 활동기의 정점을 다시 확인.

레드 제플린

애틀랜틱과의 기존 계약이 끝난 뒤 매니저 피터 그랜트 관리 아래 자체 레이블 스완 송을 1974년 5월 출범시킴. 5월 7일 뉴욕과 1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범 행사를 열었으며, 자사 음반과 외부 아티스트의 작품을 애틀랜틱 유통망을 통해 발매하는 구조를 마련함. 공식 자료도 레이블 출범 시점을 1974년 5월로 제시함.

레드 제플린

1973년 북미 투어 중 플로리다 탬파 스타디움 단독 공연에 5만 6,800명이 입장하고 3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 1965년 비틀즈의 셰이 스타디움 공연 관중 5만 5,000명을 넘어서 단일 아티스트 미국 최다 유료 관중 기록을 경신. 스타디움 단독 흥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아레나·스타디움 록 시대의 상징적 사건으로 언급.

레드 제플린

미국에서 5집 《Houses of the Holy》를 발매하고 이틀 뒤 영국에도 출시. 〈The Song Remains the Same〉·〈No Quarter〉·〈D'yer Mak'er〉 등에서 레게·펑크·신서사이저를 끌어들여 장르 실험 폭을 넓힘. 자이언츠 코즈웨이 사진을 바탕으로 한 커버 미술로도 널리 알려진 앨범.

레드 제플린

웨일스 시골 오두막 브론이어아우르 체류 중 만든 곡들을 중심으로 3집을 발매. 〈Immigrant Song〉의 강렬한 리프와 함께 켈틱 포크·어쿠스틱 편성 비중을 크게 늘려 하드 록 밴드라는 규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임. 발매 직후 평단 반응이 엇갈렸으나 이후 밴드의 폭을 넓힌 전환점으로 재평가.

레드 제플린

투어 이동 중 여러 스튜디오를 옮겨 다니며 녹음한 2집을 미국에서 발매. 〈Whole Lotta Love〉의 리프와 중간부 사운드 실험이 하드 록의 표준적 어법으로 굳어지는 계기. 미국과 영국 차트 정상에 올라 밴드를 세계적 흥행 밴드로 올려놓은 작품.

레드 제플린

미국 투어 중 데뷔 앨범을 애틀랜틱 레코드를 통해 북미에 발매. 1968년 9~10월 런던 올림픽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블루스 기반 하드 록 사운드가 담기며 〈Good Times Bad Times〉·〈Dazed and Confused〉 등이 수록. 영국 발매는 같은 해 3월 28일에 이어짐.

레드 제플린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미국 애틀랜틱 레코드와 대형 선급금 조건의 계약을 성사. 음악적 결정권과 녹음물 편집권을 밴드 쪽에 남기는 조건을 확보해 이후 앨범 중심 전략의 기반을 마련. 데뷔 앨범이 이미 자체 비용으로 완성된 상태에서 계약이 이뤄진 점도 협상력에 작용.

레드 제플린

스칸디나비아 투어 뒤 사용하던 '뉴 야드버즈' 명의를 버리고 10월 25일 레드 제플린으로 이름을 변경. 이름은 키스 문이 새 그룹 구상을 두고 '납 풍선처럼 추락할 것'이라고 농담한 일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미 페이지가 회고. 야드버즈의 잔여 계약을 수행하던 임시 명칭에서 독립된 밴드명으로 전환함.

레드 제플린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존 폴 존스·존 본햄 편성이 1968년 8월 런던에서 첫 합주를 가진 뒤 스칸디나비아 투어에 나섬. 9월 7일 덴마크 글라드삭세의 틴 클럽 무대에서 네 명이 처음으로 청중 앞에 함께 연주함. 야드버즈의 잔여 공연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뉴 야드버즈’ 명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새 밴드의 첫 무대.

레드 제플린

야드버즈의 잔여 공연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지미 페이지가 로버트 플랜트·존 폴 존스·존 본햄을 규합함. 네 사람은 1968년 8월 런던 제러드 스트리트의 작은 연습실에서 처음 합주한 것으로 전해지며, 정확한 날짜는 공식 사이트도 8월 12일이 포함된 주간을 대략적인 시점으로 제시함. 새 편성은 9월 스칸디나비아 공연을 소화한 뒤 레드 제플린으로 이름을 바꿈.

레드 제플린

라이고의 두 관측소가 약 13억 광년 밖에서 두 블랙홀이 병합하며 방출한 중력파 신호(GW150914)를 동시에 포착함. 측정된 파형이 일반 상대성이론이 예측한 블랙홀 병합 파형과 일치한 결과. 아인슈타인의 예측 100년 만의 첫 직접 검출로, 2016년 2월 11일 공식 발표되며 중력파 천문학의 시대를 연 사건.

일반 상대성이론

조지프 H. 테일러 연구진이 PSR B1913+16의 궤도 주기가 지속적으로 감소함을 처음 보고함. 두 중성자별이 중력파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할 때 일반 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궤도 감소와 부합하는 결과로, 중력파가 천체계의 운동에 미치는 효과를 관측한 최초의 강력한 간접 증거가 됨. 이 결과는 이듬해 학술 논문으로 정리됨.

일반 상대성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