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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조선 왕실의 선대 여섯 임금과 건국 과정을 노래한 125장의 악장. 한글 가사에 한시와 한문 주해를 결합한 책으로,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내용과 후대 임금에게 올바른 정치를 권하는 내용을 함께 담은 초기 한글 문헌.

11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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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

추가 정보

작품의 구성

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의 행적을 중국 역대 제왕의 고사와 나란히 배치한 구성. 선조의 공덕과 건국을 천명에 연결하는 찬양뿐 아니라, 후대 국왕에게 선대의 어려움을 기억하고 백성을 돌보도록 요구하는 경계의 내용도 포함함. 왕실 선대의 비범한 능력과 건국을 예고하는 신이담도 역사적 행적과 함께 서술함. 한글 노래와 대응하는 한시 아래에 인물·지명·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주해를 붙인 형식.

언어 자료의 특징

한글 가사와 주해에 적힌 고유명사를 통해 중세국어의 소리와 어휘, 당시 지명의 발음을 살필 수 있는 자료. 모음조화와 옛 자모의 사용, 한글과 한자의 병용 양상을 보여주며, 한문으로 쓰인 역사 설명과 국문 시가를 함께 읽을 수 있는 문헌.

타임라인 11건 · 1442–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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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년 2009년
1442
584년 전 · 1건

세종이 경상도와 전라도 관찰사에게 태조의 왜구 토벌을 목격한 노인들을 찾아 당시 상황을 조사하도록 명함. 《세종실록》은 이 지시가 《용비어천가》를 짓기 위한 준비였다고 기록함. 왕실 선대의 공적을 노래할 자료를 지방의 증언에서 모으려 한 편찬 과정.

조사 대상과 편찬 목적

조사 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1380년 운봉에서 벌어진 전투의 병력과 말의 수, 적을 상대했던 전술, 교전 횟수와 전투의 진행 상황. 관찰사에게 여러 고을을 다니며 목격자의 말을 상세히 적어 보고하도록 요구함. 왕명은 태조의 공적을 후세에 전한다는 목적을 먼저 제시했으며, 수집된 자료는 선왕의 업적을 찬양하는 왕실 편찬사업을 위한 것이었음.

1445
581년 전 · 1건

권제·정인지·안지가 한글 노래와 한시로 구성된 《용비어천가》 10권을 세종에게 올림. 함께 바친 글에서 총 125장을 지었다고 보고하고 왕실 선대의 행적과 창업의 어려움을 후손에게 전하려는 뜻을 밝힘. 세종은 이를 판에 새겨 간행하도록 명함.

편찬자들이 제시한 취지

권제 등은 세종에게 올린 글에서 민간의 칭송을 모으고 왕실 선대의 행적을 찾아 국어로 노래한 뒤 한시로 그 뜻을 풀이했다고 설명함. 중국 상·주 왕조의 선조를 노래한 고사에 조선 왕실의 계보를 견주고, 태조의 건국과 태종의 정치적 공적을 찬양함.

편찬자들은 왕업을 이루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자손에게 전하고 노래를 관현악에 얹어 널리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청함. 국왕에게 바친 이 글은 왕조의 기원을 정당화하는 편찬 목적과 후손에게 선대의 어려움을 기억시키려는 요청을 함께 담음.

1447
579년 전 · 4건

세종이 의정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용비어천가》를 가사로 삼은 여민락·치화평·취풍형을 공적·사적 연향에 통용하도록 함. 왕실 선대의 공덕을 노래하는 음악을 종묘에만 한정하지 않고 여러 의례와 잔치에서 사용하도록 정한 조치.

음악을 통한 보급

의정부는 예조의 공문을 바탕으로 왕실의 공적을 위아래에서 함께 노래하게 하자는 뜻을 밝힘. 조참과 외교문서를 보내거나 황제의 조칙을 맞는 행차 등에 사용할 곡과 궁조도 구체적으로 제안했으며, 세종이 이를 따름. 책의 간행·하사와 별도로 노래의 연주 장소와 사용 절차를 제도로 정한 일.

실록은 세종이 《용비어천가》에 관현악을 붙이고 빠르기를 조절해 세 곡을 만들었으며 악보도 갖추었다고 기록함. 한글 가사를 노래하는 치화평·취풍형과 한문 가사를 사용하는 여민락이 궁중 악무의 구성곡으로 이어짐.

1448
578년 전 · 1건

집현전 직제학 신석조 등이 태종의 불교 억제를 찬양한 《용비어천가》 구절을 들어 세종의 불당 건립에 반대함. 선대의 정치를 자손이 지켜야 한다는 노래의 내용을 근거로, 이를 편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교를 높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간함. 세종은 반대를 받아들이지 않고 공사를 지시함.

왕실 찬양의 노래와 국왕에 대한 간언

신석조 등은 불당의 위치를 궁성 안에서 밖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함. 《용비어천가》에 실린 태종의 사찰 정리와 후손에 대한 경계 내용을 세종에게 적용하면서 선왕을 본받으라고 요구한 것.

세종은 이미 뜻을 정한 일이며 의심이 없는 사안은 독자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힘. 도승지 이사철 등도 신하들의 의견을 따를 것을 청했으나, 세종은 선공 제조 민신을 불러 방패군 200명에게 공사를 시작하게 함. 불교에 대한 배척은 상소한 신하들의 논리로 기록된 것이며, 국왕의 결정은 그들의 요구와 달랐음.

1612
414년 전 · 1건

임진왜란 이후 《용비어천가》를 다시 간행함. 광해군 4년에 찍은 이 판본은 명나라 연호를 따라 만력본으로도 불리며, 초간본의 체제를 이어받은 목판본. 전쟁 뒤 왕실 선대의 행적과 왕조의 권위를 다시 드러내려는 간행 사업의 하나였음.

1659
367년 전 · 1건
1765
261년 전 · 1건
2009
17년 전 · 1건
갱신 202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