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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1799년의 기록 7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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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시의회는 신학부의 권고를 받아 1775년 1월 30일 이 소설의 판매와 유통을 금지함. 당국은 작품이 자살을 권하는 것으로 읽혀 취약한 독자에게 해로운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베르테르식 복장도 금지 대상에 포함함. 다만 출간 뒤 대규모 모방 자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주장은 후대 연구에서도 확정되지 않음.

베르테르 효과

1775년 4월 19일 영국군이 식민지 민병대의 무기와 군수품을 압수하기 위해 매사추세츠주 콩코드로 진군하던 중 렉싱턴에서 식민지 민병대와 처음으로 교전한 사건. 이후 콩코드 북교 일대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영국군이 보스턴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민병대의 공격이 이어짐.

미국 독립전쟁의 무력 충돌이 본격화된 날. 식민지와 영국 본국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전면전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

현대 미국 육군의 뿌리는 미국이 독립하기 전, 미국 독립 전쟁 때문에 1775년 6월 14일에 창설된 대륙군에 두고 있음.

독립전쟁 첫해, 영국 깃발과 구분되는 표지가 필요했던 식민지 연합이 13개 식민지를 뜻하는 붉은·흰 줄무늬 13개에 좌측 상단 칸톤만 영국 유니언기를 넣은 '그랜드 유니언 기(대륙연합기)'를 사용함. 1775년 12월 3일 대륙해군 기함 알프레드호에서 존 폴 존스가 처음 게양했고, 이듬해 초 케임브리지 인근 대륙군 진영(프로스펙트 힐)에도 올랐다고 전함. 별 대신 영국 국기가 남아 있던 이 깃발은 1777년 별 13개 국기로 대체되기 전까지 사실상 미국의 첫 국기였음.

제2차 대륙회의가 붉은색과 흰색의 13개 줄무늬, 푸른 바탕 위 13개의 흰 별로 구성된 미국 국기 결의를 채택. 이후 이 도안은 ‘성조기’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으며, 벳시 로스가 제작했다는 이야기는 미국 국기 기원에 관한 대표적 전승으로 확산됨.

대륙회의가 '13개 주의 국기는 붉은색과 흰색이 번갈아 나오는 13개 줄무늬로, 연합은 푸른 바탕의 흰 별 13개로 한다'는 국기 제정 결의를 채택함. 별과 줄무늬로 13개 식민지를 나타낸 이 결의가 성조기의 법적 출발점이 됨. 오늘날 미국은 이날(6월 14일)을 '국기의 날'로 기림.

1777년 10월 17일 미국 독립전쟁 중 존 버고인 장군이 지휘한 영국군과 독일계 보조 병력 약 6,000명이 뉴욕주 사라토가에서 호레이쇼 게이츠가 지휘한 미군에 항복한 사건. 전역 중 여러 차례의 전투와 보급선 단절, 포위로 영국군의 작전이 좌절된 결과.

미국의 독립 가능성을 입증하면서 프랑스의 공식 군사동맹 체결을 촉진한 결정적 승리. 미국 독립전쟁이 국제전으로 확대되는 주요 전환점.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사신단을 따라 청나라 열하를 방문함. 청의 상업·유통·기술·도시 문화를 직접 관찰한 경험은 이후 「허생전」에 나타나는 북학적 문제의식과 조선 경제 비판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으로 평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