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강습소 교장 여준과 제1회 졸업생 김석·강일수·이근호 등이 1913년 5월 6일 통화현 합니하에서 신흥교우단을 결성. 교직원·졸업생·재학생을 아우르며 군사 학술 연마와 독립사상 선전, 한인 마을 교육 활동을 추진. 뒤에 신흥학우단으로 개칭되면서 신흥학교 관계자 네트워크가 독립운동 조직으로 확장.
1913년 5월
총 7건
도산 안창호가 주도하고, 우강 송종익(송종우) 등 동지들이 함께 흥사단 조직. 무실(誠實), 역행(實踐), 충의(信義), 용감(勇氣)의 4대 정신을 바탕으로, 건전한 인격을 수양하고 민족 전체의 대업을 준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 일제강점기 미주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의 인적·물적 기반을 마련.
1913년 5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을 창립함. 청년학우회를 확대 조직해 안창호 등 발기인 6인이 창단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안창호를 전권위원으로 선출함. 무실역행과 인격 수양을 통한 민족 역량 강화를 지향한 흥사단 운동의 시작.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시민권 취득 자격이 없는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소유를 기존 조약이 허용하는 범위로 제한하고, 농지 임차를 최장 3년으로 제한하는 외국인 토지법을 승인함. 당시 미국의 귀화법상 시민권 취득 자격이 없던 일본계 이민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일본 정부의 항의를 불러온 입법. 이후 일본이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인종 평등 원칙을 제안하게 된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date: 1919-02-14 title: 마키노, 인종 평등 제안 빠진 규약 초안에 추후 재제출 방침 표명 type: event entities:
- 인종 평등 제안 (1919)
- 국제연맹
- 국제연맹 규약 위원회
- 파리 강화 회의
- 마키노 노부아키 | 제안자 links:
- FRUS, Paris Peace Conference 1919, vol. III, Protocol No. 3 (1919-02-14 본회의) | 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19Parisv03/d5
- FRUS, Paris Peace Conference 1919, vol. III, Protocol No. 5 (1919-04-28 본회의) | 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19Parisv03/d7
인종 평등 조항이 빠진 국제연맹 규약 초안이 예비 강화 회의 본회의에 보고되자 마키노 노부아키가 발언에 나섬. 이날 규약 내용에 대한 토론이 예정되지 않았음을 들어 즉각 논의를 요구하지 않고, 일본 측 제안을 후속 논의 단계에서 다시 제출해 각국 대표의 검토를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힘. 제안을 철회하지 않고 추후 재상정할 방침을 공식화한 것으로, 4월 11일 인종 평등 수정안 재제출로 이어짐.
미국의 엔지니어, 휴렛 팩커드 공동 설립자 빌 휴렛. (~2001년)
그리스의 피아노 연주자 지나 바카우어. (~1976년)
합니하(哈泥河) 본관 낙성 뒤 학교 체제를 정비하며 신흥중학교로 개칭. 중학반과 군사반을 함께 두고 일반 교육과 군사교육을 병행.
이후 중학반을 폐지해 지방 중학교에 인계하고 군사반 중심으로 운영 전환. 독립군 간부 양성에 집중하는 교육기관으로 성격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