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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1915년의 기록 5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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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PU의 동런던 지부들이 실비아 팽크허스트와 함께 독립적인 동런던 서프러제트 연맹을 형성함. 지역 노동계급 여성의 생활과 노동 문제를 참정권에 연결하고 민주적인 운영을 강조한 조직이었음. 팽크허스트 가족 내부의 차이뿐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와 요구를 운동의 중심에 둘 것인지를 둘러싼 갈등이기도 했음.

동런던 서프러제트 연맹이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편집으로 《우먼스 드레드노트》 특별 예고호를 발행함. 정규 제1호는 3월 21일에 나왔으며 여성 참정권과 지역 노동자의 요구를 알리는 지면이 마련됨. 신문은 운동의 변화와 함께 1917년 《워커스 드레드노트》로 개칭되어 사회주의·반전·공산주의 논쟁을 다루는 매체로 이어졌음.

실비아 팽크허스트

1914년 4월 2일 연방준비은행조직위원회(Reserve Bank Organization Committee)가 미국 전역을 12개 연방준비구로 나누고 각 구의 경계와 연방준비은행이 들어설 도시를 발표함. 연방준비법이 규정한 지역은행 체계가 구체적 형태로 확정된 절차로, 이후 12개 연방준비은행 설립의 직접적 기반이 됨.

연방준비제도

조반니 파스트로네의 무성 역사영화 《카비리아》가 토리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극장에서 초연. 세군도 데 초몬이 특수 촬영효과에 참여해 대규모 역사극의 시각적 표현에 기여한 작품.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부인 조피가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 지배와 남슬라브 민족주의가 충돌한 상황에서 발생한 정치적 암살.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전쟁을 선포하는 7월 위기로 이어짐. 유럽 열강의 동맹과 동원 체제가 연쇄 작동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됨.

시어도어 데이비스가 발굴권을 내려놓은 뒤 카나번 경이 왕가의 계곡의 발굴 허가를 확보한 전환점. 하워드 카터는 투탕카멘의 이름이 새겨진 유물들을 단서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왕묘가 있다고 판단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대규모 탐사가 지연된 상황.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회람을 통해 전투적인 참정권 운동의 중단을 알림. 지도부는 전쟁 지원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으며, 이는 전쟁을 반대하거나 참정권 요구를 계속하려는 활동가들과 다른 선택이었음. 전쟁 이전의 대정부 대결 구도가 크게 바뀐 전환점임.

여성사회정치연합

셔먼법의 포괄적 금지 조항을 보완하기 위해 가격차별·배타적 거래·경쟁을 해칠 우려가 있는 주식 인수·겸임이사 등을 구체적으로 다룬 클레이턴법의 제정. 이미 형성된 독점에 대한 사후 소송뿐 아니라 경쟁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는 관행을 규율하고 민간 피해자의 구제수단을 보강한 입법. 노동을 상품으로 보지 않는다는 원칙과 노동조합의 적법한 목적 수행에 관한 보호 규정도 포함하여, 기업 결합과 노동자의 조직 활동을 구별하려는 대응의 제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