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동런던 가정의 생계가 흔들리고 독일산 장난감 수입이 끊기자 팽크허스트와 동런던 서프러제트 연맹이 노먼 로드에 장난감 공장을 세움. 여성들에게 지역의 통상적인 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며 목제 장난감과 인형 등을 생산했고, 노동자들의 디자인과 예술가들의 협력도 활용함. 일하는 어머니들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공간을 함께 마련하여 고용과 돌봄을 연결함.
12개 연방준비은행, 일제히 업무 개시
1914년 11월 16일 12개 연방준비은행이 같은 날 업무를 시작함. 제1차 세계대전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조직·인력·설비를 단기간에 갖추고 개점했으며, 연방준비법으로 설계된 중앙은행 제도가 실제 운영 단계에 들어간 시점.
안창호,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에 선출
안창호가 미주 한인 독립운동의 대표적 통합 조직인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에 선출됨. 흥사단을 통한 인재 양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를 기반으로 재미 한인사회의 조직화와 독립운동 지원을 이끌게 됨.
경성부윤의 자문기구이자 일제 식민통치의 지방행정 보조기구였던 경성부협의회의 관선 협의회원으로 1914년, 1918년, 1920년 세 차례 임명됨.
김성수,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졸업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함. 귀국 뒤 교육·기업 경영 활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됨.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에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으며, 1901년 첫 시상 이후 처음으로 해당 연도의 상이 수여되지 않음. 1915년과 1916년에도 수상자가 없었고, 1917년에는 포로·부상병과 가족을 돕는 활동을 인정받은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예외적으로 수상함. 1918년에는 다시 수상자 없이 넘어간 전쟁기. 전쟁 기간 내내 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외교적 평화의 붕괴 속에서도 인도적 구호가 평화 활동으로 인정된 사례.
인턴 수련제도 도입
병원에서 의사 실무 수련을 위한 인턴제도 실시. 진료 현장과 의학교육을 연결하는 제도적 변화.
컬럼비아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학계의 제안 대신 증권업을 선택함.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사정 속에서 시작한 실무 경험이 훗날 투자 분석과 강의의 기반이 됨.
매수자 부족 등으로 주거단지 공사가 중단됨. 계획했던 60채 가운데 주택은 두 채만 지어졌으며, 이후 시가 매입해 공공 공간으로 바꾸는 계기가 됨.
다른 건축 작업에서 물러나 성당 건설에 집중하기 시작함. 사망할 때까지 남은 생애를 이 프로젝트에 바침.
나혜석, 「이상적 부인」으로 여성의 삶에 관한 문제 제기
도쿄 유학생 잡지 《학지광》에 「이상적 부인」을 발표함. 미술을 배우던 시기부터 여성의 삶과 사회적 기대를 글의 주제로 다루기 시작함.
테런스 영 출생
영국의 영화감독 테런스 영. (~1994년)
월터 워싱턴 출생
미국의 정치인, 워싱턴 D.C.의 첫 흑인 시장 월터 워싱턴. (~2003년)
코카-콜라 보틀링 협회, 식별 가능한 병 개발을 의결
코카-콜라 보틀링 협회 이사회가 모방품에 대응할 새 병의 개발비로 최대 500달러를 쓰기로 의결함. 의뢰 조건은 어둠 속 촉감이나 깨진 유리 조각만으로도 제품을 알아볼 수 있는 용기였음. 병입업계가 상표 외에 용기 형태로 제품을 구별하는 설계 기준을 공식화함.
김성수, 중앙학교 인수
중앙학교의 채무를 갚고 경영권을 인수함. 이후 학교 운영과 시설 정비를 추진하며 교육사업을 본격화함.
1915년 5월 6일 미국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조지 오슨 웰스(George Orson Welles)로 태어남.
김남수 (교육인) 출생
대한민국의 침술사 김남수. (~2020년)
아소 가즈코 출생
일본의 내각총리 요시다 시게루의 딸, 아소 다로의 어머니 아소 가즈코. (~1996년)
러시아의 정치인 세르게이 비테. (1849년~)
마리오 모니첼리 출생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마리오 모니첼리.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