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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1917년의 기록 4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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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1917년 11월 2일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서한에서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국가적 고향'(national home)을 수립하는 데 대한 영국 정부의 지지를 표명함.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기존 비유대인 공동체의 시민적·종교적 권리와 다른 나라 유대인의 권리·정치적 지위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함. 독립 유대 국가의 즉각적 설립을 약속한 문서로 단정해서는 안 되며, 뒤이은 영국 위임통치와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쟁점으로 연결됨.

현재 중국 지린성에 속하는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용의 아들로 태어난 윤동주. 한국인 이주민 공동체와 기독교 교육이 자리한 마을에서 자라며 한국어와 신앙, 공동체의 삶을 접한 출발점. 출생일은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과 국가보훈부 자료에 제시된 1917년 12월 30일 기준.

제1차 세계대전 중 병으로 귀국한 톨킨이 회복기에 곤돌린의 몰락 이야기를 씀. 1916~1917년에 시작된 《잃어버린 이야기》의 산문 작업과 이어지며, 나중의 《실마릴리온》을 이루는 옛 시대 전설의 초기 형태에 해당함.

실마릴리온

에멀린·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가 이끈 WSPU가 여성당으로 전환됨. 전쟁 이전의 전투적 참정권 조직에서 전쟁 지원과 새로운 정치 활동을 지향하는 조직으로 성격이 바뀜. 다른 여성 참정권 단체들은 이와 별개로 투표권 확대를 위한 활동을 계속했음.

여성사회정치연합

일제강점기 고적조사 과정에서 석촌동·가락동 일대의 무덤을 실측하고 고분 분포도를 작성함. 개별 무덤의 내부와 외형을 조사하고 위치 관계를 도면으로 남긴 작업임.

이 분포도를 후대에 분석한 결과 당시 약 290기의 무덤이 밀집했던 것으로 파악됨. 도시개발로 상당수가 사라지기 전의 묘역 규모와 공간 배치를 비교하는 중요한 기초자료가 된 조사임.

전쟁으로 지연되었던 왕가의 계곡 탐사를 카터와 이집트 인부들이 본격적으로 재개한 시기. 기존 발굴의 잔토와 암석을 걷어내며 조사 구역을 넓혔지만 여러 해 동안 결정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고, 장기간의 비용 부담이 후원 중단 논의로 이어진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