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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05

19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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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뒤 독립운동 열기의 고조와 입학생 증가로 기존 합니하 시설의 수용 한계가 커지자, 유하현 제3구 고산자 하동 대두자로 이전·개교하고 신흥무관학교로 개칭.

고산자 학교를 본교로 삼고 합니하 학교는 분교로 운영. 장교반 6개월·하사관반 3개월·특별훈련반 1개월의 단기 군사교육과정을 편성하며 독립군 양성 체제 정비. 윤기섭이 교감, 이세영이 교장을 맡고 성준용·원병상·이범석 등이 교관으로 참여.

신흥무관학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무총장 겸 파리 주재위원인 김규식, 「한국 독립에 관한 청원서」와 「한국 독립 항고서」를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 『한국 독립과 평화』를 비롯한 홍보 문서도 각국 대표와 언론에 배포하며 일제 식민 지배의 실상과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림. 한국 문제가 강화 회의의 정식 의제로 채택되지는 못했으나, 임시정부의 이름으로 한국인의 독립 요구를 국제사회에 전달한 대표적인 외교 활동.

김규식 (우사)

신흥중학교가 고산자로 이전해 신흥무관학교로 개편된 뒤,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지청천이 연성대장으로, 윈난강무학교 출신 이범석·러시아군 장교 출신 김경천 등이 교관으로 참여.

장교·하사관 양성 과정에서 전술·병학·지휘 교육을 담당하며 학교의 군사교육 체계 강화. 지청천은 이후 교성대장을 거쳐 서로군정서 사령관으로 활동.

이범석의 신흥무관학교 교관 활동은 1919년 10월에도 확인됨.

신흥무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