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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의 기록 7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7건 표시

02 · 월

헨리 스팀슨 미국 전쟁장관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대일 경고와 전후 처리 구상을 담은 메모 및 선언 초안을 제출한 일. 일본 본토 침공의 큰 피해를 피할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항복과 점령·비군사화의 조건을 미리 알리자는 제안. 최종 승인된 문서가 아니라 포츠담 회담을 앞둔 검토안으로, 이후 선언의 형성 과정을 보여 주는 사료.

16 · 월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진이 뉴멕시코 사막에서 플루토늄 내폭형 핵장치 Gadget을 폭발시켜 세계 최초의 핵폭발 시험에 성공함. 실험은 1945년 7월 16일 새벽 실시되었으며 로스앨러모스가 개발한 내폭 시스템의 실제 작동 가능성을 입증함. 이후 같은 기본 방식이 나가사키에 투하된 Fat Man에 사용됨.

17 · 화

트루먼·처칠·스탈린이 독일 포츠담에서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정상회담을 시작한 일. 유럽의 국경과 독일 점령 문제가 주요 의제였지만, 회담 기간에 일본에 대한 항복 요구문도 마련된 배경. 미국·영국·소련의 회담 참가국 구성과 미국·영국·중국의 포츠담 선언 발표국 구성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 회의.

20 · 금

『독립신문』 충칭판이 1945년 7월 20일 제7호 발행.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비정기적으로 간행된 중국어 판본의 마지막 확인 호수로, 임시정부의 대외 활동과 한국광복군 관련 소식, 국제 정세 및 항일전선 관련 기사를 수록.

독립신문 상하이판

25 · 수

처칠 영국 총리가 트루먼에게 서한을 보내 대일 선언의 현 문안에 영국 정부를 대표해 서명할 뜻을 밝히고 조속한 발표를 요청한 일. 경제활동을 다룬 제11항의 문구 수정을 제안한 기록. 이튿날 장제스의 전문 동의와 함께 미국·영국·중국 세 정부 명의의 발표로 이어진 협의.

26 · 목

미국·영국·중국이 일본의 항복 조건을 제시하면서 카이로 선언의 이행을 요구한 사건. 일본의 주권을 혼슈·홋카이도·규슈·시코쿠와 연합국이 정할 작은 섬들로 제한한다는 제8항의 명시. 점령과 비군사화, 전쟁범죄 처벌 및 평화적 경제활동의 원칙이 함께 제시되면서 이후 항복과 강화조약의 기준 마련.

28 · 토

스즈키 간타로 일본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포츠담 선언을 카이로 선언의 반복으로 낮게 평가하고, 묵살하며 전쟁을 계속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일. 미국이 감청한 일본 방송의 번역문에 남은 기록. ‘묵살’이라는 단어의 의도와 번역에는 논쟁이 있지만, 이를 단순한 번역 실수 하나가 원자폭탄 투하를 초래했다는 인과관계로 단정할 수는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