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결성
서울 시천교회에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 결성되고 홍윤옥이 위원장으로 선출된 사건.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의 노동 부문을 배경으로 출발한 전국적 노동단체이며, 1948년 대한노동총연맹 개칭과 1954년 총연합회 재편으로 이어진 전신 조직의 출범.
현재 5건 표시
서울 시천교회에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 결성되고 홍윤옥이 위원장으로 선출된 사건.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의 노동 부문을 배경으로 출발한 전국적 노동단체이며, 1948년 대한노동총연맹 개칭과 1954년 총연합회 재편으로 이어진 전신 조직의 출범.
딘 애치슨이 이끄는 국무부 원자력위원회 산하 자문단이 「국제 원자력 통제에 관한 보고서」를 완성함. 오펜하이머는 데이비드 릴리엔털 등과 자문단에 참여해 보고서 작성에 큰 역할을 했으며, 핵물질 채굴과 핵무기 생산 가능 시설을 국제적인 원자력개발기구가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함. 보고서는 같은 달 28일 공식 공개됨.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임시정부 수립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본회의를 개최함. 협의에 참여시킬 한국의 정당·사회단체 범위를 둘러싼 대립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1947년 재개된 제2차 회의도 결국 결렬됨. 황실 건물이 해방 후 국가 수립과 분단 문제를 논의하는 국제정치의 현장으로 사용된 사례.
해방 후 서울운동장에서 서울과 평양의 대항전이 다시 열렸음. 자유신문사가 주최했으며, 3월 25일과 27일 경기가 진행되었음. 오랫동안 경기를 기다린 관중의 관심도 높았음.
그러나 해방이 곧 자유로운 왕래의 정착을 뜻하지는 않았음. 군정과 38선에 따른 이동 제약, 분단의 심화 속에서 대회는 지속되지 못했고, 이 경기가 해방 후 처음이자 마지막 경평축구로 남았음.
일본에 남은 조선인의 귀환 의사를 등록하고 소지금·화물 반출 제한을 둔 계획송환의 시행. 재산과 생계기반을 충분히 옮기기 어려운 조건이 귀환을 제약하면서, 귀환 희망과 실제 이동 사이의 간격이 드러난 전환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