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X-1 1호기, 첫 무동력 활공시험
잭 울럼스가 플로리다 파인캐슬 비행장에서 X-1 1호기의 첫 활공시험을 수행함. B-29가 기체를 공중으로 운반한 뒤 분리했으며, 로켓 추진을 시작하기 전에 저속 조종성과 착륙 특성을 점검함.
이 단계는 곧바로 속도 기록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분리·조종·착륙 절차를 먼저 확인하는 과정이었음. 날짜는 NASA의 상세 비행 연표와 1세대 X-1 해설에 따른 것임.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SCAPIN 제677호로 일본 정부의 행정권 행사 범위를 정하면서 울릉도·독도·제주도를 그 범위에서 제외한 조치. 한국 관련 섬들을 일본의 행정에서 분리한 중요한 점령기 문서. 다만 제6항에서 포츠담 선언에 따른 작은 섬들의 최종 처리에 관한 연합국 방침을 뜻하지 않는다고 명시하여, 행정 조치와 최종 영토 결정의 구별 필요.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이 53개 도시를 방문하는 미국 횡단 순회공연에 나선 사건. 서부 지역의 청중을 넘어 전국에 악단의 연주를 소개한 활동임.
명치좌, 해방 후 국제극장으로 개칭
해방 뒤 명치좌가 국제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영화와 공연을 상연함. 식민지기 극장 건물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운영 주체와 관객층, 공간의 상징이 변화한 시기였음.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결성
서울 시천교회에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 결성되고 홍윤옥이 위원장으로 선출된 사건.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의 노동 부문을 배경으로 출발한 전국적 노동단체이며, 1948년 대한노동총연맹 개칭과 1954년 총연합회 재편으로 이어진 전신 조직의 출범.
딘 애치슨이 이끄는 국무부 원자력위원회 산하 자문단이 「국제 원자력 통제에 관한 보고서」를 완성함. 오펜하이머는 데이비드 릴리엔털 등과 자문단에 참여해 보고서 작성에 큰 역할을 했으며, 핵물질 채굴과 핵무기 생산 가능 시설을 국제적인 원자력개발기구가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함. 보고서는 같은 달 28일 공식 공개됨.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임시정부 수립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본회의를 개최함. 협의에 참여시킬 한국의 정당·사회단체 범위를 둘러싼 대립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1947년 재개된 제2차 회의도 결국 결렬됨. 황실 건물이 해방 후 국가 수립과 분단 문제를 논의하는 국제정치의 현장으로 사용된 사례.
서울·평양 축구팀, 해방 후 경평축구대항전 재개
해방 후 서울운동장에서 서울과 평양의 대항전이 다시 열렸음. 자유신문사가 주최했으며, 3월 25일과 27일 경기가 진행되었음. 오랫동안 경기를 기다린 관중의 관심도 높았음.
그러나 해방이 곧 자유로운 왕래의 정착을 뜻하지는 않았음. 군정과 38선에 따른 이동 제약, 분단의 심화 속에서 대회는 지속되지 못했고, 이 경기가 해방 후 처음이자 마지막 경평축구로 남았음.
일본에 남은 조선인의 귀환 의사를 등록하고 소지금·화물 반출 제한을 둔 계획송환의 시행. 재산과 생계기반을 충분히 옮기기 어려운 조건이 귀환을 제약하면서, 귀환 희망과 실제 이동 사이의 간격이 드러난 전환점.
혼마 마사하루 사망
일본의 전범 혼마 마사하루. (1888년~)
다케우치 데이조 사망
일본의 축구 선수 다케우치 데이조. (1908년~)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 제21차 총회가 기구 해산 결의를 채택. 국제연맹은 국제연합 헌장 발효 뒤에도 청산 절차를 위해 존속했으며, 최종 총회에서 자산과 문서, 일부 기능을 국제연합과 관련 전문기구에 이관하는 절차를 승인.
국제연맹 사무국은 청산 작업을 거쳐 활동을 종료하고 제네바의 만국궁을 국제연합에 이관. 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한 일부 연계 조직은 별도의 법적 지위를 바탕으로 활동을 지속.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1883년~)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출생
러시아의 정치가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2022년)
해방 후 최초 노동절 기념행사 개최
좌익 노동단체인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약칭 전평)’에서 주관하는 노동절 기념행사가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개최. 약 20만 여명의 노동자 참석. 전국에서 ‘8시간 노동제를 즉시 실천하라. 생활이 보장되는 최저 임금제를 실시하라. 실업자에게 직업을 달라. 공장 폐쇄 및 해고 절대 반대’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와 미군정은 좌익 단체의 노동운동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