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피곳 스미스 출생
영국의 배우 팀 피곳 스미스. (~2017년)
재 동경 순국열사 해방의사 유골 봉환회가 일본 각지의 형무소 묘지를 찾아 수습해서 한국(부산)으로 봉환. 이후 부산, 대구, 대전, 천안, 서울 순으로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각 지역에서 추모가 이루어짐.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시민들이 만세와 추모를 했다고 함. 서울역에 도착한 날짜는 6월 16일.
안상수 (인천 출신 정치인) 출생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 안상수.
미하일 칼리닌 사망
러시아의 정치인, 혁명가 미하일 칼리닌. (1875년~)
정읍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론 제기
이승만이 전라북도 정읍에서 남북을 포괄하는 정부 구성이 어려워진 상황을 들어,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또는 위원회 등을 조직하자는 구상을 공개적으로 제시함.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중단된 뒤 나온 발언으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 노선이 드러난 중요한 계기였음.
이 발언은 이미 진행 중이던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 신탁통치를 둘러싼 대립, 남북의 정치체제 재편 속에서 나왔음. 이승만은 남한의 정치적 기반을 먼저 마련해 소련의 철수와 통일을 추진한다는 논리를 폈으나, 통일정부 수립을 우선한 세력과의 거리는 커졌음. 분단의 원인을 한 사람의 발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후 단독선거와 정부 수립을 지지한 그의 선택을 보여 주는 사건임.
미국의 권투 선수 잭 존슨. (1878년~)
존 로지 베어드 사망
영국의 발명가 존 로지 베어드. (1888년~)
실베스터 스탤론 출생
미국 뉴욕에서 실베스터 스탤론 출생. 이후 《록키》의 각본가이자 주연 배우로 이름을 알리고, 록키 발보아와 존 람보를 중심으로 장기 시리즈를 이끈 배우·각본가·감독·제작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영결식이자 봉환식으로 광복 이후 한국에서 거행된 첫 국민장. 영결식은 서울운동장(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거행, 유해는 효창공원에 안장.
참고로 독립운동가 김승학 선생의 증손인 김병기가 당시 장례식의 장례 절차를 담고 있는 '삼의사 국민장 행사요령'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탁(기증). (2015년 8월 10일) 함께 기증한 유물은 봉오동전투도, 순국의사명부초, 광복군 국내 제2지대장 위임장 등 50여 점.
미군정의 국립서울대학교안 발표로 경성대학과 여러 전문 교육기관을 하나의 종합대학으로 통합하는 계획의 공식화. 추진 측은 교육기관 재편과 종합대학의 교육적 이점을 강조했으나, 상당수 교수·학생은 관선 이사회가 인사와 운영의 실권을 장악하는 구조, 대학 자치의 약화, 학생 수용과 교수 확보 문제에 반대.
반대운동은 1947년 전국적인 동맹휴학으로 확대되고 서울대 수업도 파행을 겪은 갈등. 국대안 지지운동도 함께 전개된 가운데, 1947년 5월 한국인 중심으로 이사회를 재편하는 법 개정 이후 반대운동이 잦아들고 9월 학기부터 수업이 정상화된 경과.
새 국가의 고등교육 체계를 만드는 과제가 대학 구성원의 자치 요구 및 미군정의 교육정책과 충돌한 설립기의 핵심 사건.
김규식·여운형, 좌우합작위원회 발족 주도
김규식과 여운형, 1946년 5월부터 좌우 정치세력의 합작을 위한 회담을 진행한 끝에 7월 25일 좌우합작위원회를 발족. 김규식은 우측 주석, 여운형은 좌측 주석을 맡아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를 각각 대표함. 좌우합작을 바탕으로 남북을 아우르는 통일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휴회 중이던 미소공동위원회를 재개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함.
FIAF, 파리에서 전후 첫 총회 개최
전쟁으로 중단된 영화자료원 간 협력이 파리 총회를 통해 재개됨. 전후 새로운 아카이브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국제 교류망을 다시 구축하는 출발점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