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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의 국립서울대학교안 발표로 경성대학과 여러 전문 교육기관을 하나의 종합대학으로 통합하는 계획의 공식화. 추진 측은 교육기관 재편과 종합대학의 교육적 이점을 강조했으나, 상당수 교수·학생은 관선 이사회가 인사와 운영의 실권을 장악하는 구조, 대학 자치의 약화, 학생 수용과 교수 확보 문제에 반대.

반대운동은 1947년 전국적인 동맹휴학으로 확대되고 서울대 수업도 파행을 겪은 갈등. 국대안 지지운동도 함께 전개된 가운데, 1947년 5월 한국인 중심으로 이사회를 재편하는 법 개정 이후 반대운동이 잦아들고 9월 학기부터 수업이 정상화된 경과.

새 국가의 고등교육 체계를 만드는 과제가 대학 구성원의 자치 요구 및 미군정의 교육정책과 충돌한 설립기의 핵심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