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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의 기록 7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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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법령 제102호로 국립서울대학교의 설립 근거가 마련된 사건. 기존 대학·전문학교의 조직을 통합하고 재산·설비·기록·인력을 새 대학으로 이관하도록 정한 법적 재편. 식민지 시기의 제국대학 및 전문학교 관련 법령 가운데 새 대학과 충돌하는 규정도 폐지한 조치.

제3조는 인종·국적·종교·성별·신분·경제적 지위를 입학과 재학, 학위·장학금 등의 부여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삼지 못하도록 규정한 원칙. 이는 실제 교육 기회의 평등을 곧바로 실현했다는 뜻이 아니라, 새 국립대학이 내세운 비차별적 고등교육의 제도적 기준.

법령의 공포·시행일인 8월 22일과 대학이 기념하는 통합 개교일인 10월 15일을 구분하게 하는 설립사의 기준점.

서울대학교

스위스 이탈리아어권 도시 로카르노의 그랜드 호텔 정원에서 첫 영화제가 개막했으며, 상영은 9월 2일까지 이어졌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영화를 통해 국제적인 문화 교류를 다시 시작하려는 흐름 속에서 출발했음.

처음부터 오늘날의 피아자 그란데에서 열린 것은 아니었음. 호텔 정원의 야외 상영에서 출발한 행사가 이후 도시의 광장과 여러 극장을 아우르는 영화제로 성장했음.

바르샤바 노볼립키 거리 68번지 폐허에서 금속 상자 10개에 보관한 링겔블룸 아카이브의 첫 부분이 발굴됨. 오네그 샤바트 생존자 헤르시 바세르 등의 기억과 전후 수색으로 나치 점령기에 묻어 둔 문서를 다시 찾음.

일기·편지·행정 문서와 생활 기록은 유대인 공동체의 박해와 생존 경험을 전하는 자료였음. 땅속의 습기 등으로 손상된 종이를 복원하고 내용을 분류하는 작업이 뒤따랐으며, 이후 유대역사연구소의 핵심 소장 자료가 됨.

1946년 9월 30일과 10월 1일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가 주요 나치 지도자들에 대한 판결을 선고함. 피고인 22명 가운데 19명이 유죄, 3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고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됨. 재판부는 게슈타포·보안국(SD)·친위대(SS)·나치당 지도부를 일정 범위에서 범죄조직으로 판단해 개인과 조직의 전쟁범죄·반인도범죄 책임을 국제법적으로 다룬 선례를 남김.

국립서울대학교가 9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갖춘 종합대학으로 개교한 사건. 8월 22일 설립 법령에 따라 경성대학과 여러 전문 교육기관을 통합하고, 문리과·공과·농림·법과·사범·상과·의과·예술·치과 계열을 하나의 대학 체계로 편성한 결과.

경성대학은 경성제국대학을 해방 후 개칭한 기관으로 서울대에 통합된 여러 전신 가운데 하나. 기존 기관들의 건물·자료·설비·인력은 통합 대학으로 이관되었으나, 제국대학 관련 제도를 폐지하고 새 국립종합대학을 설립한 법적 재편도 함께 이루어진 과정. 따라서 시설과 학문적 기반의 연속성, 1946년 통합 대학의 설립, 식민지 교육제도의 평가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역사.

출범 당시에는 단과대학들이 동숭동·연건동·공릉동·수원 등 여러 지역에 분산된 상태. 1975년 관악캠퍼스 종합화는 이러한 공간적 분산을 줄이는 후속 전환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된 나치 독일 주요 지도자 10명에 대해 1946년 10월 16일 교수형이 집행됨. 전체 사형선고 대상은 12명이었으나, 헤르만 괴링은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마르틴 보어만은 궐석재판 대상이어서 처형되지 않음.

나치 독일의 침략전쟁·전쟁범죄·반인도범죄에 대한 국제적 형사책임 추궁이 실제 형 집행으로 이어진 사건. 이후 국제형사법과 전쟁범죄 재판의 역사에 중요한 선례로 기록됨.

1946년 10월 24일 미국 뉴멕시코 화이트샌즈에서 발사된 V-2 로켓에 장착된 카메라가 약 105km 고도에서 지구를 촬영. 우주에서 지구 사진을 얻은 최초의 기록으로, 인공위성 이전의 지구관측 기술을 보여준 사건.

미국의 군·과학 연구진은 전후 확보한 V-2 로켓에 35mm 필름 카메라를 탑재하여 화이트샌즈 시험장에서 발사. 로켓의 비행 도중 약 105km 상공에서 지구 표면을 촬영했으며, 추락 충격 속에서도 보호된 필름을 회수할 수 있었음.

이 촬영은 1959년 최초의 지구 궤도 사진보다 앞선 우주 공간에서의 촬영이며, 이후 기상위성·지구관측 기술 발전의 초기 사례로 평가됨.

모든 성인 대축일에,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수품. 아담 스테판 사피에하 추기경의 개인 경당에서 비공개로 진행. 나치 점령기 동안 비밀 신학교에서 수학하며 준비한 끝에 사제가 됨. 서품 이튿날 바벨 대성당 성 레오나르도 경당에서 첫 미사 집전. 이후 로마 유학을 떠나 본격적인 신학 연구와 성직자의 길을 시작함.

벨의 시험비행사 찰머스 ‘슬릭’ 굿린이 X-1 2호기로 첫 동력비행을 수행하여 마하 0.79에 도달함. 앞선 활공시험에서 확인한 기체에 로켓 추진을 더하면서 본격적인 고속시험 단계로 넘어감.

처음 음속을 돌파한 기체는 1호기였지만, X-1 사업의 첫 동력비행은 2호기가 수행했다는 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

벨 X-1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정식 개원을 하루 앞두고 열린 예비회의에서 참석 의원 53명 중 49명의 찬성으로 김규식을 초대 의장으로 선출. 이튿날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57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원함. 김규식은 좌우합작운동을 제도 정치로 연결하고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준비하려 했으나, 입법의원이 제정한 법령은 미군정 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효력이 발생하는 제약을 지님.

김규식 (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