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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과 유도회 운영을 둘러싼 분규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명세를 비롯한 재단파가 김창숙 계열과 충돌함. 1957년 7월 11일 전국 지방유도회 및 향교대표자대회를 둘러싼 충돌 이후 재단파가 성균관과 유도회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