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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와 시위 탄압에 항의하는 학생·시민의 대규모 시위가 서울과 부산·광주 등 전국으로 확산된 사건. 마산의 유혈진압, 4월 11일 김주열의 시신 발견,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에 대한 정치폭력배의 습격이 항의 확산의 배경.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과 도시 노동자·빈민 등 여러 계층이 참여한 저항.

서울대학교 학생들도 각 단과대학에서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했으며, 경찰의 발포로 서울대생 6명이 목숨을 잃음. 전국적으로 경찰의 실탄 발포에 따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정부는 주요 도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함. 이승만이 승인한 계엄의 효력은 실제 선포 이전의 경찰 발포 시점까지 소급 적용됨. 대통령의 계엄 승인과 경찰 지휘부·현장 경찰의 구체적인 발포 책임은 구별되는 문제.

계엄 이후에도 항의가 계속되어 4월 25일 교수단 시위와 26일 이승만의 하야 발표로 이어짐. 국가의 유혈진압에 따른 희생 속에서 국민의 선거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 저항이 장기집권 체제를 무너뜨린 전환점.

1961년 4월 19일 미국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자 부대의 피그스만 상륙작전이 쿠바 정부군에 의해 사실상 격퇴된 사건. 4월 17일 상륙한 침공군은 충분한 공중 지원과 현지 반란을 확보하지 못한 채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반격에 밀렸으며, 19일 오후 조직적인 침공 작전이 무너짐.

존 F. 케네디 미국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큰 타격을 주고 쿠바와 소련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킨 냉전기의 사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이어지는 미·쿠바 관계 악화의 중요한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