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1월 3일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와 외교·영사관계를 공식 단절한다고 발표함. 쿠바 정부가 미국 외교공관 직원 규모를 크게 제한하라고 요구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으며,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갈등이 급속히 심화됨. 이 조치는 이후 피그스만 침공과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이어지는 미국·쿠바 대립의 주요 전환점임.
1961년 제작된 이만희 감독의 영화 《주마등》의 한국 극장 개봉. 본처에게 학대받고 집을 떠난 소실과 두 자녀가 성장한 뒤 과거의 갈등을 넘어서는 가족 멜로드라마. 이만희의 감독 데뷔작.
《성춘향》은 신상옥이 감독·제작하고 최은희·김진규가 출연한 1961년 영화. 같은 고전을 원작으로 한 홍성기의 《춘향전》과 열흘 간격으로 개봉하며 컬러 시네마스코프의 볼거리를 둘러싼 흥행 경쟁.
서울 관객 약 38만 명을 모은 흥행작으로 신필름의 사업 확대를 뒷받침.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두 영화 가운데 먼저 개봉한 작품은 홍성기의 《춘향전》.
임희재가 각본을 맡아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에 희극적 대사와 멜로드라마 요소를 더한 작품.
SADE가 저수지에 산사태가 들어올 때 발생할 파도를 알아보기 위해 1:200 축척의 수리 모형실험을 의뢰함. 위험 자체는 인식되고 있었지만, 실험에서 가정한 산사태의 속도와 형태가 결과를 좌우했음. 실제로는 거대한 사면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실험이 예상한 범위를 넘어서는 파도가 발생하게 됨.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에서 제7차 콜레라 팬데믹 시작
1961년 1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에서 엘토르(El Tor) 생물형 콜레라가 크게 확산하며 제7차 콜레라 팬데믹이 시작됨. 같은 해 자바와 수마트라 등지로 전파된 뒤 여러 대륙으로 확대되었으며, 기존 여섯 차례의 콜레라 팬데믹과 달리 오늘날까지 일부 지역에서 유행이 이어짐. 안전한 식수·위생시설·치료에 대한 접근 격차가 피해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으로 남아 있음.
《오발탄》 상영 신고서 접수
문교부가 제작자의 상영 신고서를 접수. 첫 심의에서는 잔인하다고 지적된 한 장면을 삭제.
임희재가 각본을 쓰고 강대진이 연출한 가족영화 《마부》 개봉. 짐수레를 끄는 홀아비 춘삼과 네 자녀가 생계와 진로, 결혼 문제로 겪는 시련을 다룬 작품. 김승호가 춘삼, 신영균이 장남 수업, 조미령과 엄앵란이 두 딸로 출연.
황정순은 마주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며 춘삼을 돕고 애정을 나누는 수원댁 역. 춘삼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이자 모아 둔 돈으로 말을 사주고, 마지막에는 그의 자녀들에게 어머니로 받아들여지는 인물.
첫 세계기상의 날 개최
WMO 설립협약 발효일을 기념하는 첫 세계기상의 날 개최. 기상업무의 사회적 가치와 국제협력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정례 기념일의 시작으로, 이후 매년 기상·기후·물 분야의 주제를 선정하는 국제 소통 창구 정착.
박정희와 장교 약 40명이 서울 명동 양명빌딩에 모여 쿠데타 참여를 다짐함. 서울 근교 부대를 동원할 계획 아래 준비를 진행했으나 실행일을 거듭 미룬 뒤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킴.
올렉산드르 신 출생
우크라이나의 정치인, 고려인 올렉산드르 신.
전날 전야제에 이어 서울 국제극장에서 정식 개봉. 제작 착수 약 1년 만의 관객 공개.
《오발탄》 개봉 직후 재심의 착수
개봉 다음날부터 절망적인 사회 묘사를 문제 삼은 당국의 재심의 시작. 이후 상영 제한으로 이어진 전환점.
1961년 4월 19일 미국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자 부대의 피그스만 상륙작전이 쿠바 정부군에 의해 사실상 격퇴된 사건. 4월 17일 상륙한 침공군은 충분한 공중 지원과 현지 반란을 확보하지 못한 채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반격에 밀렸으며, 19일 오후 조직적인 침공 작전이 무너짐.
존 F. 케네디 미국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큰 타격을 주고 쿠바와 소련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킨 냉전기의 사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이어지는 미·쿠바 관계 악화의 중요한 배경.
150여 년간의 영국 식민 통치를 끝내고 공식적으로 독립. 밀턴 마르가이(Milton Margai) 수상이 독립을 이끔. 이로서 영연방의 회원국이 됨. 독립 초기에는입헌군주제였으나 1971년 공화국으로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