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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의 기록 9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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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온트 저수지에 물을 채우는 시험이 시작됨. 담수는 시설을 실제로 운용하기 위한 절차였지만, 수위 변화가 저수지 주변 사면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확인해야 했음. 같은 해 토크산에서는 균열과 움직임이 관찰되면서 단순한 국지적 낙석보다 큰 위험이 드러나기 시작함.

바이온트 댐 참사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 〈Microelectronics and the Art of Similitude〉를 발표. 전자소자를 극소형화할 때 기존 크기의 장치에서 통하던 물리적 직관과 설계 판단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짚고, ‘상사성(similitude)’ 개념을 통해 축소된 소자의 동작과 설계 가능성을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함.

이 발표는 집적회로 소형화가 단순한 크기 축소가 아니라 성능·전력·물리 현상의 관계를 함께 바꾸는 문제라는 점을 일찍이 다룬 사례로 평가됨. 후대에는 1965년 고든 무어의 집적회로 집적도 관찰에 앞선 선행 논의로 자주 언급되며, 당시 청중에는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고든 무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짐.

1960년 2월 29일 밤 모로코 대서양 연안 도시 아가디르에서 규모 약 5.7~5.9의 지진이 발생한 사건. 진원이 얕고 건축물이 취약해 도시의 상당 부분이 무너졌으며 약 1만 2천 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주민이 부상·이재민이 됨.

비교적 중간 규모의 지진도 도시 구조와 건축물의 내진성에 따라 참혹한 피해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재난. 도시 재건과 모로코의 지진 대비 정책을 연결하는 사건.

제록스 914의 첫 상용 제품이 고객에게 배송됨. 경쟁 제품보다 제조비가 높아 일시불 판매가 쉽지 않자 낮은 월 최소요금에 복사량에 따른 비용을 더하는 임대 방식을 채택함. 고객이 15일 전에 통지하면 계약을 끝낼 수 있도록 해 새 기계를 도입할 부담을 낮추고, 복사량이 늘수록 회사 수익도 늘어나는 구조를 마련함.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이 정부통령 선거에 행정·경찰 조직을 동원해 대규모 부정을 저질렀음. 마산의 항의 시위와 경찰의 유혈진압은 4월혁명으로 이어짐.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제5대 부통령 선거가 실시됨.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의 사망으로 이승만의 당선이 사실상 확실해진 뒤에도, 자유당은 고령의 대통령을 승계할 부통령 후보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부정선거 계획을 강행했음. 선거 준비에는 최인규 내무부장관을 비롯한 행정·경찰 조직과 자유당 기획기구가 관여했음.

투표함에 미리 표를 넣는 사전투표, 3인조·9인조 공개투표, 대리·무더기 투표, 야당 참관 방해와 폭력이 동원됨. 이는 일부 투표소의 우발적 위반을 넘어 국가기관과 여당 조직이 결합한 선거권 침해였음. 선거 당일 마산에서 부정을 규탄하는 학생·시민들의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했음.

정부와 경찰은 시위를 공산당의 선동으로 몰아가려 했음. 마산 경찰은 친공 구호를 적은 쪽지를 사망한 시위자들의 주머니에 넣는 증거조작까지 벌였으며, 관련 경찰들은 정권 붕괴 후 무고 혐의로 구속됨. 이승만도 4월 13일 담화에서 공산당 배후 혐의를 제기했음. 시위의 실제 원인이었던 부정선거와 경찰 발포에 대한 책임 추궁을 용공 혐의로 돌린 대응이었음. 다만 경찰의 구체적인 증거조작을 이승만이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님.

정부가 시위를 탄압하는 가운데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자 항의는 다시 확대됨.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은 이승만 정권의 책임을 묻는 전국적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했음.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의 네 번째 당선을 확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4월혁명과 정권 붕괴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가 됨.

이승만

로버트 파운드와 글렌 레브카가 하버드대학교 제퍼슨 물리학 실험실의 약 22.5미터 탑에서 감마선의 중력에 따른 진동수 변화를 측정한 결과를 발표함. 뫼스바우어 효과를 이용해 지구 중력장에서 생기는 미세한 적색·청색편이를 검출하고 예측값의 약 10% 불확도 범위에서 일치시킨 성과. 이후 파운드·스나이더의 후속 실험으로 1% 미만 수준까지 정밀해진 지상 중력 적색편이 검증의 출발점.

일반 상대성이론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에 저항하다 실종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

미국 해군의 트랜싯 1B가 케이프커내버럴에서 발사되어 궤도 진입에 성공함. 앞선 1A의 실패를 딛고, 위성 전파를 이용한 항법과 궤도 추적을 실제 우주에서 시험할 수 있게 됨.

트랜싯은 도플러 편이로 수신기의 위치를 계산하는 체계였음. 이 발사는 곧바로 완성된 항법 서비스의 개통을 뜻하지는 않았으며, 이후 시험위성과 지상 체계를 개선한 끝에 해군의 실용 운용으로 이어짐.

도플러 효과 트랜싯 (위성항법 시스템) GPS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와 시위 탄압에 항의하는 학생·시민의 대규모 시위가 서울과 부산·광주 등 전국으로 확산된 사건. 마산의 유혈진압, 4월 11일 김주열의 시신 발견,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에 대한 정치폭력배의 습격이 항의 확산의 배경.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과 도시 노동자·빈민 등 여러 계층이 참여한 저항.

서울대학교 학생들도 각 단과대학에서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했으며, 경찰의 발포로 서울대생 6명이 목숨을 잃음. 전국적으로 경찰의 실탄 발포에 따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정부는 주요 도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함. 이승만이 승인한 계엄의 효력은 실제 선포 이전의 경찰 발포 시점까지 소급 적용됨. 대통령의 계엄 승인과 경찰 지휘부·현장 경찰의 구체적인 발포 책임은 구별되는 문제.

계엄 이후에도 항의가 계속되어 4월 25일 교수단 시위와 26일 이승만의 하야 발표로 이어짐. 국가의 유혈진압에 따른 희생 속에서 국민의 선거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 저항이 장기집권 체제를 무너뜨린 전환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