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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의 기록 9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9건 표시

02 · 금

이 보고서(Classification and Nomenclature of Viruses: Fifth Report of the ICTV)는 1990년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바이러스학회(International Congress of Virology)에서 결정된 분류 체계를 정리하여 담고 있으며, 한타바이러스 속(Genus Hantavirus)이 번야바이러스과(Bunyaviridae) 내의 새로운 속으로 공식 등재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

당시 분류한 한타바이러스 속

  • 분류: 부니아바이러스과(Bunyaviridae)의 5개 속 중 하나로 분류
  • 정의: 최소 6종 이상의 바이러스로 구성된 하나의 공인된 그룹과, 아직 항원 복합체로 할당되지 않은 다수의 분리주
  • 특성: 다른 부니아바이러스 속들과 달리 절지동물 매개체가 관여하지 않으며, 주로 설치류를 통해 전파된다는 점이 명시

주요 포함 바이러스 (분리주)

  • 한탄 바이러스 (Hantaan virus, HTNV): 속의 전형(Type species)으로, 등줄쥐(Apodemus agrarius)가 주요 숙
  • 서울 바이러스 (Seoul virus, SEOV): 집쥐(Rattus norvegicus)에서 분리
  • 푸말라 바이러스 (Puumala virus, PUUV): 유럽의 대륙밭쥐에서 발견.
  • 프로스펙트 힐 바이러스 (Prospect Hill virus, PHV): 북미의 밭쥐에서 분리되었으나 인간에게는 무해한 것으로 알려짐
  • 기타: 보고서에는 Girard Point, Lee, Sapporo rat, Tchoupitoulas virus 등 당시 연구 중이던 분리주 언급

05 · 월

대한민국이 유엔 헌장상 의무 수락 선언을 제출했음. 노태우 대통령이 서울에서 선언에 서명한 날짜는 7월 19일이었으며, 실제 제출일은 8월 5일이었음. 남북한의 문서가 모두 마련되면서 양측의 신청을 함께 심사할 수 있게 되었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06 · 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신규회원국가입위원회가 제74차 회의에서 남북한의 신청을 다루었음. 가입 자격과 제출 문서를 검토하는 단계였으며, 이틀 뒤 안보리가 정식 추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이루어진 절차였음. 위원회의 심사 자체가 유엔 회원국 지위를 부여하는 최종 결정은 아니었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08 · 목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 702호를 채택하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 가입을 총회에 추천했음. 각각 제출된 두 신청에 대해 함께 추천을 내린 것임. 이로써 수십 년간 가입을 가로막았던 안보리의 장벽을 넘었지만, 정식 회원국 지위는 이후 총회의 가입 결정으로 얻게 되었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12 · 월

14 · 수

김학순이 서울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거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며 피해 사실을 증언함.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위안소에서 겪은 피해를 밝히고 일본 정부에 사실 인정과 사죄를 요구함.

김학순의 증언은 사회적 낙인과 침묵에 가려져 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공적인 역사 문제이자 여성인권 문제로 드러낸 결정적 전환점. 이후 다른 피해생존자들의 신고와 공개 증언,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 청구 소송과 국제적 연대 활동으로 이어짐.

이날은 김학순의 증언을 기려 2012년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정해졌으며, 대한민국에서는 2017년 법정 국가기념일로 지정됨.

김학순 (여성운동가)

교수들의 직접선거를 거쳐 선출된 김종운이 제19대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함. 교수들의 직접투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을 도입한 첫 사례. 정부의 공식 임명 절차에 앞서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한 변화.

대학 자율성과 학내 민주화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대학 운영 제도의 변화로 이어진 전환점.

25 · 일

30 · 금

보잉이 새 주문 부족을 이유로 707 생산을 다시 시작하려던 노력을 중단한다고 발표함. 민간형 생산이 끝난 뒤 제한적으로 이어졌던 사업의 축소를 보여 주는 결정이었음.

이 발표를 전 세계 707의 즉시 퇴역일이나 모든 군용 파생형의 최종 완성일로 해석해서는 안 됨. 생산 계획, 기체 인도, 개별 항공사의 운항 종료는 각각 구분되는 단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