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발트 3국의 독립 공식 인정
소련 국가평의회가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독립을 공식 인정한 결정. 세 나라는 이미 각각 독립 회복을 선언하고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기 시작한 상태였으며, 9월 6일의 소련 중앙정부 인정은 발트 국가들의 소련 이탈과 국제사회 복귀를 사실상 확정한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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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국가평의회가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독립을 공식 인정한 결정. 세 나라는 이미 각각 독립 회복을 선언하고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기 시작한 상태였으며, 9월 6일의 소련 중앙정부 인정은 발트 국가들의 소련 이탈과 국제사회 복귀를 사실상 확정한 단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구성하던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주권과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 투표 참여자의 약 96%가 독립에 찬성했으며, 이후 의회의 독립 절차와 1991년 11월 새 헌법 채택으로 이어진 국가 형성의 핵심 분기점.
현재의 북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비교적 평화적으로 독립 국가로 전환하는 기반이 된 투표. 다만 알바니아계 주민 상당수가 투표를 보이콧해 독립 과정 초기부터 국가 정체성과 민족 간 대표성 문제가 함께 드러난 계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주요 정당·정치조직·시민사회 세력이 요하네스버그에서 국가평화협정에 서명. 정치세력과 치안기관의 행동규범을 마련하고 지역·국가 단위 평화위원회와 폭력 조사·중재 체계를 설치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종식과 민주적 정치협상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합의.
유엔 총회가 결의 46/1을 표결 없이 채택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 회원국 가입을 각각 승인. 같은 날 열린 제46차 총회 첫 본회의에서 미크로네시아 연방·마셜 제도·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가입도 각각 별도 결의로 승인.
1991년 9월 18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이른바 ‘정신대 신고전화’를 개설함. 김학순의 공개 증언 이후 다른 피해생존자들의 증언과 피해 신고를 접수하기 위해 마련한 창구.
신고전화를 통한 피해 사실의 수집은 개별 증언을 집단적인 피해 조사로 확장하는 계기가 됨. 1992년 2월 29일까지 정대협에 접수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신고자는 70명이며, 이 가운데 당시 생존자는 41명으로 집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