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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와 시위 탄압에 항의하는 학생·시민의 대규모 시위가 서울과 부산·광주 등 전국으로 확산된 사건. 마산의 유혈진압, 4월 11일 김주열의 시신 발견,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에 대한 정치폭력배의 습격이 항의 확산의 배경.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과 도시 노동자·빈민 등 여러 계층이 참여한 저항.

서울대학교 학생들도 각 단과대학에서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했으며, 경찰의 발포로 서울대생 6명이 목숨을 잃음. 전국적으로 경찰의 실탄 발포에 따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정부는 주요 도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함. 이승만이 승인한 계엄의 효력은 실제 선포 이전의 경찰 발포 시점까지 소급 적용됨. 대통령의 계엄 승인과 경찰 지휘부·현장 경찰의 구체적인 발포 책임은 구별되는 문제.

계엄 이후에도 항의가 계속되어 4월 25일 교수단 시위와 26일 이승만의 하야 발표로 이어짐. 국가의 유혈진압에 따른 희생 속에서 국민의 선거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 저항이 장기집권 체제를 무너뜨린 전환점.

1995년 4월 19일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의 앨프리드 P. 머라 연방청사 앞에서 티머시 맥베이가 폭발물을 실은 트럭을 폭파한 사건.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168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으며 주변 건물에도 큰 피해가 발생함.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국내 테러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연방 수사·대테러 정책과 공공청사 보안에 큰 영향을 미침. 미국 연방정부에 대한 극단주의적 적대감이 폭력으로 표출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