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화학당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하고, 1919년 4월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함. 서대문감옥 수감 중 옥중 만세운동을 이어가다 1920년 순국함.
추가 정보
충청남도 목천군에서 태어나 1916년 이화학당에 편입해 수학함. 1919년 3월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뒤 휴교령으로 고향에 돌아가 지역 인사들과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준비함.
1919년 4월 1일 천안 병천 아우내장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됨.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며, 서대문감옥에 수감됨.
수감 중에도 독립만세운동을 이어가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함. 같은 해 9월 28일 서대문감옥에서 순국함.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201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함.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으로 기소된 유관순이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함. 경성복심법원이 6월 30일 징역 3년을 선고했으며, 유관순이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됨.
이화학당 고등과에 재학 중이던 유관순이 동료 학생들과 서울의 3·1운동 만세시위에 참여함. 3월 5일 남대문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학생 만세시위에도 참가함.
유관순이 서대문감옥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함. 수감자들이 이에 호응했으며, 이후 유관순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가혹한 탄압을 받음.
대한민국 정부, 유관순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가 서훈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가 유관순에게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함.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에서 훈장이 수여됨.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이 고향인 충남 천안 병천(아우내) 장터에서 조인원·유중권 등과 함께 수천 명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 시위를 주도함. 일제 헌병의 발포로 유관순의 부모를 포함해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다수가 부상함. 유관순은 주동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이듬해 옥중에서 순국, 3·1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음.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서대문감옥에 수감 중이던 유관순이 1920년 9월 28일 서거. 수감 중에도 독립만세운동을 이어갔으며, 순국 이후 3·1운동과 학생·여성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