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치안본부에서 대공수사업무를 담당하며 전기고문을 비롯한 각종 가혹행위로 피의자들로부터 허위자백을 강요했다고 불리는 인물. 수배령에도 12년 도피생활을 지속하다 공소시효 후에 자수. 고문 기술자.
22 타임라인
2 사실
9 관련 링크
간격이 실제 시간에 비례합니다. 기록이 없는 구간은 길수록 멀리 벌어집니다.
수록 이벤트 분포 점을 선택하면 해당 이벤트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1938년부터 1958년까지 수록 이벤트가 없는 구간 접힘
1938년 2026년
수록 이벤트가 없는 긴 구간은 빗금 두 개로 접어 표시합니다.
1950 공백 20년
1970 공백 15년
1974 1974–1988 9건 · 14년 사이에 밀집
1974 ~ 1979 경기도경 대공분실 근무
1979-03-17 조선일보 청룡봉사상 충 부문 수상
1981 내무부장관 표창
1982 21사단 표창
1985-09-04 ~ 1985-09-26 김근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피해
1985-12-19 민청련 사건 첫 재판에서 고문 사실 폭로
1986-10-23 이근안, 옥조근정훈장 표창
1987-12-10 간첩죄 뒤집어쓴 김성학이 이근안 고소
1988
1988-12 검찰이 수사 착수하자 잠적
1990 공백 11년
1999 1999–2011 8건 · 12년 사이에 밀집
1999-10-28 이근안, 도피생활 끝에 자수
1999-11 납북어부 김성학 불법 감금, 고문 혐의로 구속기소
2000-05-23 법원, 이근안 도피 지원한 박처원에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선고
2000-09-26 대법원에서 징역 7년 확정 판정
2006-03-21 국무회의 의결로 176명 서훈 취소
2006-11-07 형기 만료 출소 (수사 대상자 불법감금, 고문)
2008-10-31 이근안,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
2011
2011-12-16 이근안, 국제외교안보포럼 강사로 강연
2015 공백 10년
그 외 사실들 2건
발언
나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고문 기술자가 아니다. (중략) 강압적 수사가 있었지만 당시 상황에는 그때에 맞는 수사 기준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간첩들이 버젓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공안기능이 무너져 제대로 잡지 못한다.
갱신 2026-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