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사키 가즈에 출생
모리사키 가즈에가 일본 식민지 시기 조선의 대구에서 출생. 교사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경주와 김천에서도 성장한 일본인 가정의 딸.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 1927–2022)는 식민지 조선의 대구에서 태어나 경주와 김천에서 성장한 일본의 시인이자 작가. 1944년 후쿠오카여자전문학교 진학을 위해 조선을 떠났으며, 1950년 마루야마 유타카가 주재한 시 동인지 『모음(母音)』에 참여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와 한국 여행기에서는 어린 시절을 보낸 조선과 일본인 식민자의 자녀라는 자신의 위치를 거듭 성찰.
1958년 지쿠호 탄광 지대로 이주해 우에노 에이신·다니가와 간과 『서클촌』을 창간하고, 이듬해 여성 교류지 『무명통신』을 발행. 전직 여성 광부들을 직접 찾아가 노동과 생활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 목소리를 첫 저서 『막쿠라』에 기록. 글쓰기와 함께 ‘오키나와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활동했고, RKB 다큐멘터리 『풀 위의 춤』에서는 재일한국·조선인 1세 여성들의 생활과 귀향을 다루는 구성 작업에 참여.
1968년 조선을 떠난 지 24년 만에 한국을 찾아 어린 시절의 유모와 재회. 1985년에는 채경희와 한국을 여행하며 여고 동창인 사회복지 활동가 김임순을 다시 만나 거제도 애광원을 방문했고, 이후에도 구술취재와 무나카타 시민들의 애광원 교류에 참여. 2000년에는 채경희와 한국 다큐멘터리 촬영에 동행했고, 2000년대 초에는 재일코리안 작가 강신자와 만나 조선에서의 경험과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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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사키 가즈에가 일본 식민지 시기 조선의 대구에서 출생. 교사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경주와 김천에서도 성장한 일본인 가정의 딸.
모리사키 가즈에가 후쿠오카여자전문학교에 입학하며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이주. 대구·경주·김천에서 보낸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뒤로하고 일본에서 생활을 시작한 시기.
모리사키 가즈에가 지쿠호로 거처를 옮긴 뒤 우에노 에이신·다니가와 간 등과 문화운동지 『서클촌(サークル村)』을 창간. 탄광 지대의 노동자와 지역의 글 쓰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시·생활기록·르포르타주를 나누려 한 공동 작업.
모리사키 가즈에가 여성 교류지 『무명통신(無名通信)』을 창간. 아내·어머니·주부라는 역할에 가려진 여성 자신의 경험과 말을 나누고,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놓치기 쉬운 성과 생활의 문제를 논의한 소규모 잡지.
모리사키 가즈에가 지쿠호의 전직 여성 광부들을 찾아가 들은 이야기를 『막쿠라(まっくら)』로 엮어 리론샤에서 출간. 1959년 7월부터 1960년 4월까지 『서클촌』에 연재한 「스라를 끄는 여자들」을 바탕으로, 갱내 노동과 출산·가족생활이 얽힌 여성들의 삶을 기록한 첫 저서.
모리사키 가즈에가 아버지를 대신해 경주중학교 창립 30주년 행사에 초청되어 한국을 방문. 5월 4일까지 이어진 여행에서 어린 시절 자신을 돌본 조선인 유모와 재회하고, 기억 속 고향과 해방 이후 한국의 현실을 다시 마주한 여정.
모리사키 가즈에가 지쿠호·기타큐슈의 노동자와 청년들이 결성한 ‘오키나와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활동. 오키나와의 투쟁을 생활지역의 노동 문제와 연결하여 논의하고, 서로 다른 지역 사람들의 경험을 나누려 한 연대 활동.
모리사키 가즈에가 가와니시 이타루와 함께 미이케의 요론섬 출신 이주민들이 마련한 첫 집단 고향 방문에 동행. 탄광 지역으로 옮겨 산 사람들이 섬을 다시 찾는 여정을 따라가고, 같은 해 6월 신문에 현장 이야기를 전한 취재.
모리사키 가즈에가 기무라 에이분이 연출한 RKB 다큐멘터리 『막쿠라(まっくら)』의 구성을 맡고 직접 출연. 같은 제목의 구술집에서 출발했지만 배우를 기용해 폐광이 이어지는 지쿠호의 삶을 그린 실험적 방송 작품.
모리사키 가즈에가 논픽션 『가라유키상(からゆきさん)』을 아사히신문사에서 출간. 빈곤 속에서 해외 성매매업소로 팔려 간 여성들의 생애를 좇으며, 국경을 넘은 여성의 이동과 일본 사회의 관계를 다룬 기록.
모리사키 가즈에가 구성을 맡은 RKB 다큐멘터리 『풀 위의 춤(草の上の舞踏)』 방송. 후쿠오카 산사의 계절과 의례, 재일한국·조선인 1세 여성들의 고향 방문을 따라가며 이들의 생활과 고향에 대한 마음을 담은 작품. 기무라 에이분 연출, 제33회 예술제 우수상 수상작.
모리사키 가즈에가 2월 26일부터 3월 15일까지 규슈대 유학생 채경희와 한국을 여행하며 대구·김천·서울·거제를 방문. 여행 중 김천공립고등여학교 동급생이던 김임순과 재회하고 거제도 애광원을 찾아, 옛 학교의 인연을 돌봄과 교육 현장의 교류로 이어 간 취재 여행.
모리사키 가즈에가 후쿠오카현 여성사와 관련한 구술취재를 진행. 1990~1991년의 인터뷰를 담은 노트 두 권이 남아 있으며, 여성들의 개인적 기억을 지역 여성사의 자료로 모은 조사.
모리사키 가즈에가 김임순과 안동·경주를 함께 여행. 7월 1일부터 13일까지의 일정과 대화를 적은 노트가 남아 있으며, 1985년 재회 이후 이어진 두 사람의 만남과 한국 현장 취재의 기록.
모리사키 가즈에가 일본 무나카타시의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된 김임순과 공개 대담. 거제도 애광원의 돌봄·교육 활동을 일본 시민들과 나누고, 이후 시민들의 애광원 교류지원모임 ‘애행회(愛行會)’ 활동으로 이어진 만남.
김임순과 거제도 애광원 관계자들이 무나카타를 방문해 시민들과 교류. 모리사키 가즈에의 노트에는 10월 16~19일 방문 일정과 17일 시 주최 축제의 작품 바자 준비 과정을 기록.
모리사키 가즈에와 채경희가 TNC 다큐멘터리 『메아리 울려 퍼지는 산하 속으로(こだまひびく山河の中へ)』의 한국 촬영에 동행. 서울과 거제도 애광원 등 두 사람과 인연이 깊은 장소를 함께 돌아본 9일간의 여정.
모리사키 가즈에의 회고록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박승주·마쓰이 리에의 공동 번역으로 글항아리에서 출간. 1927년부터 1944년까지 대구·경주·김천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고향에 대한 애착과 식민자의 딸로서의 책임을 함께 묻는 한국어판.
모리사키는 지쿠호에서 은퇴한 여성 광부들을 직접 찾아가 노동과 생활의 이야기를 채록. RKB가 공개한 생전 인터뷰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막쿠라』를 썼으며, 이후에도 각지에서 방언으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고 회고.
우에노 지즈코는 여성 자신의 경험을 말할 언어를 찾던 시기에 모리사키의 글에서 큰 힘을 얻었다고 회고. 1990년 『뉴 페미니즘 리뷰』 창간호 대담에서 모리사키와 처음 직접 만났고, 뒤에 자신의 저서 『〈여성〉의 사상』에서 『제3의 성』을 다루며 그 독서 경험을 소개.
재일코리안 작가 강신자(姜信子)는 2000년대 초 모리사키와 처음 만나 무나카타 해변을 걸으며 가네자키 해녀 이야기를 듣고 『海路残照』를 받았다고 회고. 모리사키에게 조선에서의 경험을 묻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추도문에서는 모리사키의 여행과 ‘생의 사상’을 자신의 여정을 이해하게 한 중요한 길잡이로 설명.
2004년 강연 안내, 재일작가 정체성 — https://www.keisen.ac.jp/pastnews/0220.htm.html 첫 만남은 2000년대 초로만 확인되며 특정 연월일은 미확정. 2022년 9월 11일은 추도문 재게재일.
모리사키는 1984년 규슈대 유학생 채경희와 만나 김천고등여학교 후배라는 인연을 확인. 두 사람은 1985년 2월 26일부터 3월 15일까지 한국을 여행·취재했고, 2000년 10월에는 TNC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서울과 애광원 등을 함께 방문. 문학관 자료에 기록된 당시 채경희의 직함은 배화여자대학 일본어 통역·번역 분야 교수.
채경희 한글 표기 p.275, 2000년 방송 동행 p.278 각주20 — https://trijapan.com/data/upload/%2813%29%EC%98%A4%EB%AF%B8%EC%A0%95_1693733864.pdf
김임순은 모리사키의 김천공립고등여학교 동급생이자 거제도 애광원을 운영한 사회복지 활동가. 모리사키는 1985년 김임순과 재회한 뒤 애광원을 방문했고, 이후의 노트에는 김임순 구술취재와 무나카타 시민들의 교류 준비를 기록. 신승모는 2024년 연구에서 김임순의 양육·교육관이 모리사키의 생명관에 끼친 영향을 분석.
오미정(2023), pp.275–278 — https://trijapan.com/data/upload/%2813%29%EC%98%A4%EB%AF%B8%EC%A0%95_1693733864.pdf; MK2-79~83, PDF p.8 — https://www.kitakyushucity-bungakukan.jp/wp-content/uploads/2023/04/04b9da520f5bd73fd4bce3a3c9fcb221.pdf 김임순의 영향은 신승모(2024) 초록의 분석에 귀속.
모리사키는 1978년 11월 8일 방송된 RKB 다큐멘터리 『풀 위의 춤(草の上の舞踏)』의 구성 담당. 작품은 후쿠오카 산사의 계절과 의례, 재일한국·조선인 1세 여성들의 귀향을 통해 이들의 생활과 고향에 대한 마음을 기록. 제33회 예술제 우수상 수상작.
모리사키는 1969년 기타큐슈와 지쿠호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출범한 ‘오키나와를 생각하는 모임’에 참여. 야마모토 마치코는 이 활동을 오키나와 문제를 먼 지역의 일로만 보지 않고 각자의 노동과 생활 속에서 관계를 찾으려 한 시도로 분석.
모리사키는 1959년 여성 교류지 『무명통신』을 창간. 창간문에서 아내·어머니·주부처럼 여성에게 부여된 호칭을 벗어나 자신을 말하려는 뜻을 제시. 우에노 지즈코는 훗날 모리사키의 동의를 받아 이 잡지를 WAN 미니코미 도서관에 수록했다고 회고.
작가 약력 — https://www.chikumashobo.co.jp/author/006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