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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아동권리협약 제9조 제3항에 대한 유보를 철회한다고 유엔 사무총장에게 통보함. 해당 조항은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동이 자신의 최선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한 부모와 정기적으로 관계와 접촉을 유지할 권리를 다룸. 모든 유보를 한꺼번에 철회한 것은 아니었음.

대한민국이 무력충돌 참여 및 아동매매·성적 착취에 관한 두 선택의정서를 비준함. 두 의정서는 2004년 10월 24일 한국에 대해 발효됨. 기본 협약 가입에 이어 특정한 위험에 처한 아동을 보호하는 추가 의무를 받아들인 단계임.

아동권리협약

무력충돌 참여에 관한 선택의정서가 발효됨. 국가 군대의 18세 미만 강제징집을 금지하고, 18세 미만 군인이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도록 가능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함. 비국가 무장집단에는 18세 미만 모집·사용을 금지하며, 자원입대 규율과 강제징집 금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음.

아동권리협약

아동매매·아동성매매·아동음란물에 관한 선택의정서가 발효됨. 관련 행위의 금지와 범죄화뿐 아니라 수사·인도 등 국제협력 및 피해 아동의 보호를 위한 조치가 당사국의 의무로 구체화됨. 같은 날 채택된 무력충돌 관련 의정서와는 발효일이 다름.

아동권리협약

유엔 총회가 결의 1386(XIV)로 아동권리선언을 채택함. 교육과 건강, 놀이, 차별 없는 보호 등을 국제사회가 지켜야 할 원칙으로 제시함. 선언의 도덕적 약속을 국가의 법적 의무로 발전시키려는 논의가 이후 아동권리협약 작성으로 이어짐.

아동권리협약

전쟁과 빈곤 속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운동이 국제연맹의 선언으로 이어짐. 성장에 필요한 환경, 우선적인 구호와 착취로부터의 보호를 사회의 책임으로 제시함. 훗날 아동을 독립적인 권리 주체로 다루는 협약이 마련되는 데 역사적 토대가 되었으나, 이 선언 자체가 1989년 협약과 같은 조약은 아니었음.

아동권리협약

국립극장 전속극단 신협이 유치진 작·허석 연출의 《원술랑》을 첫 정기공연으로 올림. 공연은 1950년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부민관의 국립극장에서 이어짐. 기관 창설일인 4월 29일과 실제 첫 정기공연 개막일은 구분됨.

김동원이 원술, 박경주가 김유신, 황정순이 지소부인, 주선태가 담릉, 김선영이 진달래, 이해랑이 문무왕, 백성희가 공주로 출연함. 황정순은 뒤이어 같은 극장에서 공연한 《뇌우》에도 참여함.

1984년 기념 공연에 이어 완창판소리를 본격적인 상설 무대로 운영함. 소리꾼과 고수, 관객이 긴 시간 동안 한 바탕의 극적 흐름을 함께 경험하는 공연 기반을 마련함. 판소리 전승과 감상을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극장 프로그램으로 이어 가는 의미를 지님.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 시도 과정에서 육영수와 장봉화가 피해를 입음.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 도중, 문세광이 연설 중인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함. 박정희는 피격되지 않았고 문세광은 현장에서 체포됨. 육영수는 머리에 총상을 입었으며, 성동여자실업고 학생 장봉화도 총격 과정에서 사망함.

제1회 여우락 페스티벌이 시작되어 9월 11일까지 이어짐. 공명·노름마치·소나기 프로젝트·들소리 등이 참여해 한국 음악을 바탕으로 한 무대를 선보임. 전통음악을 고정된 형식에 가두기보다 새로운 관객과 장르를 만나는 축제로 발전하는 출발점이 됨.

국립극장

2012-2013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이 국립창극단 《수궁가》로 문을 엶. 신작을 한 차례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다듬어 상연할 작품과 연간 공연 일정을 함께 제시하는 방식임. 전속단체의 창작 역량을 축적하고 관객이 미리 작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운영상의 전환점임.

무대예술지원센터가 공연 의상·소품·배경막 등을 온라인으로 찾아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발표함. 축적한 무대 자원을 다른 창작 현장에서도 활용하도록 접근 경로를 넓힌 조치임. 단순 보관을 넘어 재사용과 공유로 이어지는 센터의 역할을 보여 줌.

국립극장

전통악기 중심의 국악관현악을 전문적으로 제작·연주할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됨. 전승 음악의 재현뿐 아니라 새로운 곡을 만들고 편성을 실험하는 창작 기반이 추가됨. 창극·한국무용과 함께 오늘날 국립극장 전속단체를 이루는 한 축이 됨.

국립극장

공연 대본과 의상, 무대미술, 예술가들의 기록을 수집·전시하는 공연예술박물관이 문을 엶. 공연이 끝난 뒤 사라지기 쉬운 무대의 흔적을 남기고 관객에게 설명하는 공간이 마련됨. 국립극장의 역할이 제작·상연을 넘어 기록 보존과 교육으로 확장됨.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