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에서 데비안의 기원과 공개 개발 모델을 주제로 강연. 프리 스탠더즈 그룹과 OSDL의 합병으로 탄생한 리눅스재단 최고기술책임자로서 공동체의 경험을 소개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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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지니 공동 창업
기업의 용도에 맞춘 리눅스 시스템을 만드는 프로지니(Progeny) 공동 창업. 본인 이력서에 1999~2005년 공동 창업자·회장·최고기술책임자로 기록된 경력.
오픈 소스 이니셔티브 초대 이사회 참여
소스 코드 공개와 공동 개발을 알리는 비영리 조직 오픈 소스 이니셔티브(OSI)의 초대 이사회에 참여. 데비안 개발을 넘어 공개 협업 방식의 확산을 돕는 활동.
애리조나대학교에서 프로그래머로 연구 참여
애리조나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서 직원 프로그래머로 일하기 시작. 2000년까지 연구에 참여하고 일부 기간 대학원 과정을 병행한 시기.
퍼듀대학교 컴퓨터과학 학사 취득
퍼듀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 학사 학위 취득. 학부 재학 중 시작한 데비안 프로젝트와 함께 쌓은 운영체제 개발 경험.
데비안 초대 대표 활동 마무리
1993년부터 맡은 데비안 대표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부터 브루스 페렌스가 이끄는 체제로 이행. 창립자 한 사람을 넘어 공동체가 운영을 이어 가는 전환점.
이언 머독 사망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42세로 사망. 데비안 공동체가 창립자의 공헌을 기리고 2017년 데비안 9 출시를 그에게 헌정한 계기.
Docker 기술진 합류
Docker의 기술진으로 합류. 데비안과 리눅스 표준화, 운영체제·개발자 플랫폼을 거친 뒤 소프트웨어 배포 분야에서 이어 간 활동.
리눅스용 분산 저장 시스템 Swarm 연구 발표
존 H. 하트먼과 함께 USENIX FREENIX 학술 프로그램에서 Swarm 연구 발표. 여러 저장 장치를 묶어 데이터 용량과 신뢰성을 높이려는 시스템을 리눅스 위에서 구현한 연구.
퍼듀대학교 컴퓨터과학 우수 동문 선정
퍼듀대학교 컴퓨터과학과와 과학대학의 2011년 우수 동문 시상식에서 수상. 데비안 창립과 공개 소프트웨어 분야의 활동을 인정받은 이력.
온라인 마케팅 소프트웨어 기업 ExactTarget에서 플랫폼 전략과 제품, 외부 개발자 프로그램을 담당. 이후 회사가 세일즈포스에 인수되면서 마케팅 클라우드 업무로 이어진 경력.
CommunityOne 기조연설과 오픈솔라리스 활동
CommunityOne 2008 기조연설 진행. 솔라리스 운영체제를 설치·갱신하기 쉬운 배포판으로 제공하려는 프로젝트 인디애나의 성과인 오픈솔라리스와 연결된 활동.
선 마이크로시스템즈로 이직
리눅스재단을 떠나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운영체제 전략을 맡은 전환. 솔라리스와 리눅스에 관한 전략을 다루고, 이후 솔라리스의 사용 문턱을 낮추는 프로젝트 인디애나를 이끈 경력.
리눅스를 접하고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에 관심
퍼듀대학교 재학 중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용할 그래픽 환경을 찾다가 리눅스를 알게 된 계기. 기존 대형 컴퓨터에서 경험한 유닉스와 비슷한 환경을 개인용 컴퓨터에서도 만들 수 있다는 발견.
이언 머독 출생
당시 서독의 콘스탄츠에서 출생한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훗날 데비안 프로젝트를 창립한 인물.
돈덕전에서 ‘모던라이트, 대한제국 황실 조명’ 특별전 개막. 과거 이곳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화문 장식등을 비롯해 근대 조명기구 100여 점을 선보이며 건물의 역사와 황실 생활을 함께 조명함.
재건 기념 현판 제막
주변 정비와 조경을 마친 돈덕전에서 현판 제막식 개최. 국립고궁박물관이 보관하는 원본 현판을 실측하고 전통 안료로 제작한 복제 현판을 설치하여 재건된 건물의 모습을 공개함.
2018년 설계를 마친 뒤 2019년부터 건물 재건공사에 착수하고 2022년 말 건축공사를 마무리함. 사라진 건물의 외형을 되살리는 작업과 함께 향후 전시·문화교류 시설로 활용할 기반을 마련함.
재건을 위한 돈덕전 터 발굴조사
돈덕전의 원래 위치와 건축 흔적을 확인하기 위한 발굴조사 실시. 출토된 타일과 벽돌 등 건축 재료를 옛 사진·문헌과 함께 검토하여 외형 재건의 근거를 확보함.
돈덕전 터의 아동유원지 활용
돈덕전이 사라진 뒤 그 터가 1930년대에 어린이 놀이 공간인 아동유원지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됨. 황궁의 영빈관이 철거된 후 궁궐 공간의 성격까지 달라진 변화로, 정확한 조성 시점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