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사업장 위험성평가 지침 시행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스스로 파악하고 위험성을 평가·개선하도록 하는 위험성평가 지침이 시행됨. 법정 기준 준수 점검에 더하여 현장의 작업 특성과 변화에 맞는 예방 활동을 체계화하기 위한 기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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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스스로 파악하고 위험성을 평가·개선하도록 하는 위험성평가 지침이 시행됨. 법정 기준 준수 점검에 더하여 현장의 작업 특성과 변화에 맞는 예방 활동을 체계화하기 위한 기준 마련.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으로 폭염작업의 건강장해 예방 기준을 강화함.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작업 등에 대해 규정된 조건에 따라 2시간 이내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을 부여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함. 기후위기에 따른 고온 노출을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 대상으로 구체화한 변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근로자와 사용자 동수로 구성하도록 법률을 개정함. 사업장 안전·보건 의사결정에서 근로자 참여를 확대하고 산업안전·위생지도사 제도를 도입하여 전문적인 예방 활동의 기반을 보완함.
개정 위험성평가 지침이 시행되어 체크리스트와 핵심요인 기술법 등 간편한 평가방식을 도입함. 월·주·일 단위의 활동을 연계하는 상시평가를 신설하고 위험성평가의 모든 과정에 근로자가 참여하도록 함.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도 실제 작업 위험을 찾고 개선하는 활동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변화.
고도 산업화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와 새로운 유형의 재해·직업병에 대응하여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함. 1981년 제정 당시의 제도를 재정비한 변화이며, 개정법은 1990년 7월 14일부터 시행됨.
산업재해 예방과 안전·보건 기준을 별도 법률로 정립하기 위해 법률 제3532호 산업안전보건법을 제정·공포함. 정부·사업주·근로자의 책임을 규정하고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독립적인 법적 틀을 마련함. 실제 시행은 준비기간을 거친 1982년 7월 1일로 정해짐.
사건지평선망원경 협력단이 은하 M87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 M87* 주변에서 관측한 밝은 고리와 중앙의 어두운 그림자 이미지를 공개함. 관측된 고리 지름과 비대칭 구조가 일반 상대론적 자기유체역학 모형의 예측과 부합하고 중심 천체의 질량을 약 65억 태양질량으로 추정한 결과. 사건지평선 규모의 구조를 처음 영상화해 강한 중력장을 시험한 천문학적 이정표.
밤 11시 26분께 명동예술극장에서 불이 나 다음 날 오전 0시 55분께 진화됨.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로비 창고 천장 부근과 전기설비 등이 손상됨. 초기에는 전기적 요인이 추정됐으며, 정확한 원인은 합동감식 대상으로 보도됨.
금융회사 건물로 쓰이던 옛 극장이 연극 중심 제작극장인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문을 엶. 개관공연으로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를 이병훈 연출로 올렸으며 장민호·신구 등 원로와 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함. 대관 중심 공간을 넘어 작품 제작과 관객 개발을 수행하는 공공극장으로 새 출발함.
명동예술극장 복원에 관한 언론의 문제 제기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업 취지를 설명함. 식민지기 건축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해방 후 공연예술의 산실이었던 장소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힘. 전면·측면 벽체 일부는 보존하고 내부와 외벽 대부분은 현대 공연장 기능에 맞춰 새로 조성한다는 방침을 제시함.
문화관광부가 2003년 매매계약에 이어 명동의 옛 국립극장 부지 매입을 완료함. 장기간 이어진 시민·예술계의 복원 요구가 공공 소유 회복과 공연장 조성 사업으로 연결됨.
문화예술인과 지역 주민 등을 중심으로 옛 국립극장 되찾기 운동 발기모임이 열림. 상업지역으로 변한 명동에 연극 공간을 되돌리자는 요구가 이후 공공 매입과 재개관 추진의 기반이 됨.
건물 소유주가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 사옥을 세우는 계획을 발표함. 상인과 문화예술인들이 추진하던 극장 되찾기 운동은 철거 위기 속에서 건물과 명동의 공연문화 기억을 보존하는 활동으로 확대됨.
장충동 국립극장 신축비용 충당을 위해 명동의 극장 건물이 대한투자금융에 매각됨. 이후 금융회사 업무시설로 사용되면서 공연장으로서의 기능이 단절됨.
국립극장의 장충동 이전에 따라 명동 건물이 산하 예술극장으로 운영됨. 국립극장의 중심 기능은 남산으로 이동했으나 명동 건물은 민간 매각 전까지 공연 공간으로 남았음.
명동 시공관을 개수한 국립극장이 820석 규모로 재개관함. 서울시와 공간을 나눠 쓰던 단계에서 벗어나 연극과 여러 공연예술을 위한 전용 무대를 갖추게 됨.
새 시민회관의 개관에 따라 서울시와 국립극장이 함께 쓰던 명동 시공관을 국립극장이 전용하기로 결정함. 영화관 구조를 공연에 맞게 바꾸기 위해 객석과 무대, 난방·위생시설 등을 개수하게 됨.
서울시가 극장 건물을 시공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함. 공연 기반이 부족하던 시기에 연극뿐 아니라 여러 집회와 행사를 수용하는 도심 공공 공간으로 기능함.
해방 뒤 명치좌가 국제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영화와 공연을 상연함. 식민지기 극장 건물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운영 주체와 관객층, 공간의 상징이 변화한 시기였음.
명동예술극장의 전신인 명치좌가 영화관으로 문을 엶. 일제강점기 일본영화 상영관에서 출발한 건물이 해방 이후 공공 공연장과 국립극장으로 전환되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문화적 기능을 축적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