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 에쓰사부로 특사 방한
시나 특사가 다나카 총리의 친서를 전달하고 한일 갈등 수습을 위한 교섭에 참여.
시나 에쓰사부로 특사가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의 친서를 가지고 방한. 일본 외무성 기록에 따르면 친서에는 일본에서 범행 준비가 이루어진 데 대한 유감과 엄중한 수사 및 불법행위 단속 방침이 담겨 있음. 양국은 특사의 방한과 교섭을 거치며 사건 뒤 고조된 갈등을 수습해 나감.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시나 특사가 다나카 총리의 친서를 전달하고 한일 갈등 수습을 위한 교섭에 참여.
시나 에쓰사부로 특사가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의 친서를 가지고 방한. 일본 외무성 기록에 따르면 친서에는 일본에서 범행 준비가 이루어진 데 대한 유감과 엄중한 수사 및 불법행위 단속 방침이 담겨 있음. 양국은 특사의 방한과 교섭을 거치며 사건 뒤 고조된 갈등을 수습해 나감.
검찰이 문세광을 내란목적살인 등 6개 죄목으로 구속 기소.
검찰이 문세광을 내란목적살인·국가보안법 위반 등 6개 죄목으로 구속 기소. 현장 체포, 수사본부 조사와 검찰 송치를 거친 문세광은 기소 이후 형사재판을 받게 됨.
문세광 사건 처리로 한일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반일 시위대가 일본대사관에 난입.
사건 이후 일본 내 수사와 조총련 대응을 둘러싸고 양국이 갈등을 빚던 중, 반일 시위대가 서울의 일본대사관에 난입. 일본 외무성은 당시 양국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된 상황을 설명하며 이 사건을 기록.
문세광이 13개 죄목으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구속 송치됨.
문세광은 13개 죄목으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구속 송치됨. 검찰은 후속 수사를 거쳐 9월 12일 6개 죄목으로 기소.
육영수가 중앙청 국민장 영결식 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됨.
오전 10시 중앙청 광장에서 육영수의 국민장 영결식 거행. 국내외 조문사절과 시민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육영수는 같은 날 오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됨.
한국 수사본부가 북한·조총련 관계자의 지령과 지원이 있었다는 취지의 수사 결과를 발표.
한국 수사본부는 문세광의 범행에 북한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관계자의 지령과 지원이 있었다는 취지의 수사 결과를 발표. 이후 일본 내 관련자 수사와 조총련에 대한 조치를 둘러싸고 한일 간 갈등이 이어짐.
육영수가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피격 당일 사망.
총상을 입은 육영수는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음. 당일 청와대 대변인 발표에 따르면 수술은 오전 10시 40분부터 5시간 40분 동안 진행됐으나, 육영수는 오후 7시에 사망.
문세광이 다른 사람 명의의 일본 여권을 이용해 한국에 입국.
일본 경찰백서와 당시 항공사 확인 보도에 따르면 문세광은 1974년 8월 6일 다른 사람 명의의 일본 여권으로 한국에 입국. 총격 사건을 약 일주일 앞둔 시점.
훗날 범행에 사용된 권총이 오사카의 파출소에서 도난당함.
오사카 미나미경찰서 관할 고즈(高津) 파출소에서 경찰 권총 도난 사건 발생. 일본 수사기관은 문세광이 권총을 훔친 것으로 판단함.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에서 받은 시험발사 자료와 도난 전에 보관한 자료를 비교한 결과, 범행에 사용된 총기가 도난당한 권총과 동일하다고 설명.
문세광이 권총을 구하려고 홍콩을 방문했으나 확보에는 실패.
일본 경찰청의 1975년 경찰백서에 따르면 문세광은 1973년 11월 권총을 구하려고 홍콩을 방문했으나 확보에는 실패. 경찰백서에 기록된 이 행적은 이듬해 일본에서 권총을 훔치기 전의 범행 준비 과정에 해당함.
사형 확정 사흘 만에 문세광의 형 집행.
서울구치소에서 문세광에 대한 사형 집행. 8월 15일 체포된 지 약 4개월 만이자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지 사흘 만.
기원전 105년 10월 6일 아라우시오 인근에서 로마 공화정군이 킴브리·테우토네스 등에게 대패함.
로마군의 두 지휘관 그나이우스 말리우스 막시무스와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사이의 지휘 갈등으로 병력이 분산된 가운데 전투가 벌어졌고, 로마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음. 이 패배는 킴브리 전쟁의 위기를 심화시켰으며, 이후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로마군 재편과 전쟁 수행의 중심에 서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1981년 10월 6일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가 카이로의 군사 퍼레이드에서 무장 군인들의 공격을 받아 사망함.
사다트는 1973년 욤키푸르 전쟁 8주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던 중 공격을 받음. 그의 사망은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과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 이후 중동 정치에 큰 충격을 주었고, 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가 뒤를 이어 이집트 대통령이 됨.
1927년 10월 6일 워너 브라더스의 《재즈 싱어》가 뉴욕에서 초연됨. 동기화된 노래와 대사를 장편영화에 성공적으로 결합해 유성영화 전환의 상징적 작품이 됨.
《재즈 싱어》는 전편이 유성으로 제작된 영화는 아니지만 Vitaphone 시스템을 사용해 음악·음향효과와 일부 동기화된 대사를 결합함. 흥행 성공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음향영화 제작과 극장 설비 전환에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되었고, 무성영화 시대에서 토키 시대로 넘어가는 산업적 전환을 상징하게 됨.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원 백마고지 일대에서 국군 제9사단과 중국인민지원군이 벌인 치열한 고지전.
한국전쟁 휴전협상이 장기화되던 시기, 철원평야를 감제하는 395고지를 둘러싸고 국군 제9사단과 중국인민지원군이 반복적으로 고지를 빼앗고 되찾는 전투를 벌임. 열흘간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격전 끝에 국군이 고지를 방어했으며,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 후반부 고지쟁탈전을 대표하는 전투로 기록됨.
1398년 10월 6일(태조 7년 음력 8월 26일), 정안군 이방원 세력이 정도전·남은과 세자 이방석 측을 제거하며 조선 초기의 권력 구도가 크게 재편됨.
태조 이성계의 왕위 계승 구도와 개국 공신 세력 사이의 갈등이 격화된 끝에 이방원 측이 무력으로 정국을 장악함. 정도전과 남은 등이 제거되고 세자 이방석과 무안대군 방번도 희생됐으며, 이후 태조의 둘째 아들 방과가 세자로 책봉되어 정종으로 즉위하는 길이 열림. 이 정변은 조선 건국 직후 왕권과 공신 세력의 관계를 재편한 핵심 분기점.
1889년 10월 6일 파리 몽마르트르 기슭에서 조제프 올레르와 샤를 지들레가 물랭 루주를 개장함.
물랭 루주는 대형 무도장과 공연장, 정원 등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파리 유흥공간으로 출발함. 프렌치 캉캉과 벨 에포크의 밤문화, 툴루즈로트렉의 포스터와 결합하며 파리 대중공연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카바레 가운데 하나가 됨.
2010년 10월 6일 대한민국과 유럽연합이 브뤼셀에서 한·EU 자유무역협정에 공식 서명함.
한·EU 자유무역협정은 상품 관세 철폐뿐 아니라 서비스·투자·지식재산권·정부조달 등 광범위한 분야의 시장 개방과 규범을 다루는 협정임. 2011년 7월 1일부터 잠정 적용되었으며, 대한민국의 대유럽 통상관계와 유럽연합의 아시아 통상정책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됨.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가 뉴욕주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한 홍역에 대응해 주 전역에 재난비상사태를 선포함. 10월 3일 기준 뉴욕주와 뉴욕시의 확진자는 합계 108명으로 집계됐으며, 비상명령은 백신 접종 가능 의료인 범위를 확대하고 검사·접종 대응을 신속화하도록 함. 해당 명령은 한시적 비상조치이므로 장기 방역체계의 영구 변경과는 구분해 기록함.
한국영상자료원이 2024년에 디지털 복원한 《플란다스의 개》가 제27회 우디네 극동영화제의 비경쟁 ‘Restored Classics’ 부문에서 복원판 유럽 초연작으로 소개. 공식 시간표에 2025년 4월 25일 오후 3시 50분 Visionario 상영으로 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