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와 국방과학연구소가 3월 첫 시험에 이어 고체추진 우주발사체의 후속 시험비행에 성공. 독자적인 우주 기반 감시정찰 능력 확보를 위한 개발 과정의 두 번째 비행시험으로, 이듬해 실사용 위성을 탑재한 시험발사로 이어진 연구개발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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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인근 해상에서 국방과학연구소의 고체추진 우주발사체 기술을 활용한 세 번째 시험발사에 성공. 한화시스템이 연구소의 발사체·궤도진입 기반기술을 바탕으로 발사체와 위성을 제작하고 발사를 주관했으며, 앞선 시험과 달리 실사용 민간 상용위성을 처음으로 우주 궤도에 투입. 국방 연구개발 성과를 민간 우주산업과 연결한 협력 사례.
진명여고, 교육정보도서관 의석관 개관
진명여자고등학교가 목동 교정에 교육정보도서관 의석관을 개관. 2005년 당시 3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
진명여자고등학교가 종로구 창성동을 떠나 양천구 목동의 신축 교사로 이전. 앞서 1987년 2월 28일 중학교를 폐교하고 고등학교 단독 체제로 전환
진명여고, 야간학급 증설
진명여고가 주간 과정에 더해 야간학급을 증설. 야간 교육 규모는 1958년 180명, 1959년 180명, 1960년 165명
진명여학교, 서울 본교 수복식 거행
부산 피난지에서 임시 수업을 이어온 진명여학교가 서울 창성동 본교에서 수복식 거행. 같은 해 6월 8일 폭격으로 삼일당이 파손된 교정으로 복귀
6년제 진명여자중학교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나누고 각 과정의 수업연한을 3년으로 조정. 개편 시기는 총동창회의 『진명 100년 인물 100년』에 1950년 6월 1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1951년으로 기록
한국전쟁 중 서울을 떠난 진명여학교가 부산 보수동 2가 68번지의 건물을 임시 교사로 삼아 피난 수업 재개
진명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항일행동과 동맹휴학에 참여. 배화·중앙보육·정신 등 서울 여러 학교의 학생들도 광주 학생 지원과 일제 규탄에 동참
학생운동의 확산을 막으려는 식민 당국이 같은 날 조기 겨울방학 조치. 시위와 동맹휴학을 억제하기 위해 학교 수업을 앞당겨 중단
진명여자중학교, 6년제 과정으로 개편
해방 이후 새 학제에 따라 진명여자중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수업연한을 6년으로 확대. 현재의 3년제 중학교와 달리 중등교육 전 과정을 포괄하는 학교 체제로 개편
1월 14일 가회동에 모인 진명·숙명·이화 등 여학교 대표들이 공동 행동을 논의.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고 구속학생 석방과 식민지 교육정책 철폐 등을 요구하며 운동을 준비
1월 16일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숙명·경성여자상업·협성실업 등 여러 학교와 함께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 이튿날 식민 당국의 참가 학교 휴교 조치와 경찰의 학생 검거
진명여자보통학교와 경성여학원을 폐지하고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교육을 집중. 고등보통학교 학급을 4개에서 8개로 늘렸으며, 1931년 5월 말 재학생은 410명
진명여학교, 부녀자를 위한 2년제 기예과 설치
진명여학교가 12세 이상 부녀자에게 보통교육과 수예 등을 가르치는 2년제 기예과를 설치. 1922년에는 수업연한 3년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부설 경성여학원으로 개편
진명여학교, 보통학교·여자고등보통학교로 개편
진명여학교 보통과가 4년제 진명여자보통학교로, 중등과가 3년제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로 인가. 초등 단계의 보통교육과 중등 단계의 여자고등보통교육을 함께 운영
진명여학교, 3년제 중등과 개교
진명여학교가 보통과 졸업생을 위한 3년제 중등과를 개교. 같은 해 6월 20일 첫 졸업식에서 보통과를 마친 10명이 중등과에 편입하고, 1911년 3월 30일 중등과 첫 졸업생 10명 배출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오전 8시 30분 무렵 진명여학교 학생들이 교내에서 독립만세 시위. 배화여학교 등 서울 여학교 학생들이 함께 준비한 기념 시위에 맞춰 동시 행동에 참여
개교 기념행사를 마친 뒤 영휘원으로 향하던 진명여학교 학생들을 태운 전차가 적선동 경복궁 서쪽 굽잇길에서 탈선·전복. 차량에 탄 학생 약 120명 가운데 다수가 중경상
운전사의 급커브 감속 소홀뿐 아니라 만원 운행과 숙련 운전사 부족 등 경성전기회사의 안전관리 문제를 둘러싼 책임 논쟁. 같은 해 여름까지 학생들의 병원 치료와 학부형위원회 활동 지속
진명여학교 개교
여성에게 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한성부 창성동에서 진명여학교가 개교. 순헌황귀비가 교지를 지원하고 엄준원이 설립을 추진해 초대 교장을 맡았으며, 2년제 보통과에 여학생 70명이 입학
모리사키 가즈에가 김임순과 안동·경주를 함께 여행. 7월 1일부터 13일까지의 일정과 대화를 적은 노트가 남아 있으며, 1985년 재회 이후 이어진 두 사람의 만남과 한국 현장 취재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