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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의 기록 4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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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가 1938년 1월부터 각 신문과 잡지에 황국신민서사를 게재하게 함. 황국신민서사는 조선인을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편입하려는 황민화 정책의 상징적 맹세문. 매일신보를 비롯한 조선어 지면은 이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며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선전의 통로로 기능.

매일신보 황국신민서사 게재

수양동우회 사건 수감 중 지병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출소한 안창호가 1938년 3월 10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에서 별세함. 독립기념관 자료는 1937년 12월 24일 입원 뒤 사망했다고 기록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사인을 간경화증으로 설명함.

안창호

일제강점기인 1938년 4월 제정된 국가총동원법은 중일전쟁을 위해 일본이 인적·물적 자원을 강제로 징발·통제한 악법. 가마솥까지 수탈하는 금속류 공출과 조선인 150만 명 이상을 강제 징용하여, 식민지 조선을 전쟁 물자 공급지로 전락시킴. 패전 후인 1946년 4월 1일에 정식으로 폐지. 1945년 12월 20일 공포된 '국가총동원법 및 전시긴급조치법 폐지법률'에 따라 최종적으로 효력을 상실

로이 플렁킷과 동료들이 냉매 관련 기체를 연구하던 중 저장 용기 안의 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이 흰 고체로 중합된 것을 발견함. 이 물질이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으로 확인됨.

PTFE는 화학물질에 잘 반응하지 않고 마찰이 작은 특성을 지닌 고분자. 듀폰이 후속 개발을 진행했으며, 테플론이라는 상표는 1945년 등록됨.

1938년 4월 29일 매일신보가 경성일보사에서 분리·독립하며 주식회사 매일신보로 재편. 이와 함께 한자 제호를 종전 每日申報에서 每日新報로 변경. 경성일보 편집국 산하에 예속되어 있던 조선어 기관지가 별도 회사 조직을 갖추며 총독부 기관지로서의 운영 체제 재정비.

매일신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영국영화협회, 뉴욕 현대미술관 영화도서관, 독일 제국영화자료원과 함께 국제필름아카이브연맹 설립 협정에 서명함. 한 나라의 수집만으로는 영화의 역사를 보존하기 어렵다는 인식 아래 자료 교환과 국제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