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히드, 영국의 허드슨 군용기 대형 주문 수주
록히드가 영국 측과 허드슨(Hudson) 군용기 생산 계약을 체결함. 당시 미국 업체의 국제 항공기 판매로는 이례적으로 큰 계약이었으며, 민간 수송기 중심의 중견 업체였던 록히드가 전시 군용기 대량생산 기업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됨.
록히드가 영국 측과 허드슨(Hudson) 군용기 생산 계약을 체결함. 당시 미국 업체의 국제 항공기 판매로는 이례적으로 큰 계약이었으며, 민간 수송기 중심의 중견 업체였던 록히드가 전시 군용기 대량생산 기업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됨.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이사로 선임됨. 이후 전시동원 체제 관련 조직에서 여러 직책을 맡음.
일제의 통제 아래 조선체육회가 강제로 해산됨. 민간 체육단체로 이어 온 조직 활동이 중단됨.
1938년 9월 30일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기는 내용의 뮌헨 협정을 체결. 체코슬로바키아가 협상 당사자에서 배제된 채 영토 양도가 결정된 사건으로, 유럽 유화정책의 한계와 제2차 세계대전 전야를 보여주는 핵심 외교 사건.
《아우의 인상화》를 《조선일보》에 발표한 날. 가까운 가족의 모습을 통해 삶의 분위기와 정서를 포착한 초기 발표작. 교지와 어린이 잡지를 넘어 신문 독자에게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발표 이력.
체스터 칼슨과 오토 코르나이가 뉴욕 아스토리아의 실험실에서 정전기와 빛을 이용해 글자를 복제하는 데 성공함. 황을 입힌 아연판에 전하를 준 뒤 글자가 적힌 유리판을 겹쳐 빛을 쬐고 가루를 뿌려 ‘10-22-38 Astoria’라는 문구를 재현함. 젖은 현상액 대신 전하와 분말을 이용한 이 실험이 훗날 제록스 914의 핵심 기술인 제로그래피로 발전함.
듀폰의 찰스 스타인이 뉴욕의 공개 행사에서 새로운 합성섬유 나일론을 발표함. 월리스 캐러더스 연구팀의 고분자 연구를 바탕으로 개발한 소재의 성질과 활용 가능성을 대중에게 소개함.
나치 독일 당국이 독일과 병합 지역의 폴란드 국적 유대인 약 1만 7천 명을 검거해 폴란드 국경으로 강제 이송하는 이른바 ‘폴렌악치온’을 전면 시행. 체포·추방은 10월 27일부터 일부 지역에서 시작되었고 28~29일 집중되었으며, 많은 피추방자가 국경 도시 즈봉신에 머물렀음. 나치 독일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대규모 유대인 강제 추방으로, 11월 반유대인 폭력 사태인 수정의 밤에 앞선 역사적 사건임.
CBS의 《머큐리 시어터 온 디 에어》에서 H. G. 웰스의 소설을 각색한 《우주 전쟁》을 방송함. 뉴스 속보처럼 구성된 사실적인 형식이 당시 일부 청취자에게 큰 혼란과 경보를 일으켰으며, 웰스의 전국적 명성을 크게 높인 방송으로 남음.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됐다가 병보석 상태에 있던 이광수가 예심 과정에서 전향을 선언함. 주요한과 함께 전향 의사를 밝히고 조선신궁을 참배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전향자 중심의 시국유지원탁회의에 참석함.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경력에서 이탈해 일제의 황민화·전쟁 협력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전환점.
슈나벨이 American Mathematical Monthly에 논문 「The Estimation of the Total Fish Population of a Lake」를 발표하며, 여러 차례 잡아 표시하고 다시 잡은 자료로 호수 전체의 물고기 수를 추정하는 방법을 제시함. 생일 문제 배후의 충돌 확률 이론이 포획-재포획 통계로 생태학에 응용된 대표 사례. 이 방식은 '슈나벨 방법'으로 불리며 개체수 추정에 널리 쓰임.
1930년대 후반 아르카뇨 이 수스 마라비야스 악단에서 활동하던 오레스테스 로페스가 단손 「Mambo」를 작곡하고, 동생 이스라엘 로페스 ‘카차오’ 등과 함께 단손의 마지막 구간에 새로운 리듬·즉흥 연주를 도입함. 곡의 정확한 작곡 연도와 장르의 단일 창시자에 대해서는 음악사 자료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1938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연도로 기록함. 이 시기의 단손-맘보와 나중에 페레스 프라도가 대중화한 빅밴드 맘보는 구별할 필요가 있음.
채플린이 히틀러를 풍자하는 영화의 첫 각본 초안을 비밀리에 집필하고, 유럽에서 뮌헨 협정이 체결되던 가을 무렵 초안의 마무리 작업 진행.
무성영화의 세계적 스타가 대사를 중심으로 한 장편을 준비하며 독재와 반유대주의를 직접적인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출발점.
보스턴의 호턴 미플린에서 출간된 첫 미국판. 색채 도판을 포함한 판본을 통해 영국 밖 영어권 독자층으로 확장되는 출판 경로.
석조전 옆에 미술관 전용 서관이 새로 건립되고 창덕궁에 있던 조선 미술품이 옮겨짐. 기존 석조전 동관은 주로 일본 미술품을, 새 서관은 조선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나뉘어 이왕가미술관을 이룸. 오늘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쓰이는 건물은 이때 지은 서관으로, 1910년 완공한 석조전 본관과 구분되는 건물.
조선일보영화제에서 무성영화 베스트 10의 하나로 선정. 개봉 당시의 작품이 후대의 필름 발굴 때문만이 아니라 당대의 영화 평가에서도 주목받았음을 보여주는 이력.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송몽규·강처중 등과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시기. 북간도에서 서울로 삶의 무대를 옮기고 문학과 사상, 언어를 공부한 과정. 주요 시편이 집중적으로 쓰이고 원고를 지켜 줄 벗들을 만난 학창 시절의 시작.
《게르니카》가 마티스·피카소·브라크·로랑스를 함께 소개한 전시의 스칸디나비아 순회에 참여. 오슬로·코펜하겐·스톡홀름 등으로 이어지며 파리 박람회 밖의 관람객과 만난 과정.
전쟁에 대한 호소와 현대미술의 형식 실험이라는 두 맥락이 겹친 이동. 한 국가관의 의뢰 작품이 국제 전시 체계 속에서 해석되고 확산되기 시작한 단계.
독일의 파울 슐라크가 카프로락탐을 바탕으로 나일론 6을 개발함. 듀폰의 나일론 66과 비슷한 용도로 쓰일 수 있지만, 원료와 고분자 제조 경로가 다른 폴리아마이드였음.
이 소재는 페를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짐. 나일론이 하나의 분자나 한 회사의 제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를 포함하는 소재군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