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V가 마이크 저지가 만든 애니메이션 《비비스와 버트헤드》를 첫 방영함. 뮤직비디오에 냉소적 논평을 덧붙이는 형식과 논쟁적인 유머로 채널의 1990년대 정체성을 대표한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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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가 1992년 5월 21일 리얼리티 프로그램 《더 리얼 월드》를 처음 방영함. 서로 낯선 젊은이들이 한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형식으로, 현대 리얼리티 텔레비전의 초기 대표작이자 MTV 편성이 음악에서 생활·갈등 서사로 넓어지는 전환점.
MTV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청년층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Choose or Lose》 캠페인을 전개함. 후보 인터뷰와 현장 보도를 결합해 음악 채널의 공적 의제 개입을 확장한 사례.
MTV가 1989년 11월 26일 어쿠스틱 라이브 공연 프로그램 《MTV 언플러그드》를 처음 방영함. 전자 악기 대신 어쿠스틱 편곡으로 아티스트의 무대를 담는 형식으로, 친밀한 분위기의 재해석 공연이 특징. 이후 여러 아티스트의 대표적 라이브 음반을 배출한 인기 시리즈.
MTV가 런-DMC가 진행한 미국판 《Yo! MTV Raps》 파일럿을 방영함. 랩 뮤직비디오·인터뷰·공연을 전국 케이블 시청자에게 정기적으로 소개하며 힙합의 대중적 확산에 기여한 프로그램.
MTV가 1987년 8월 1일 유럽 시장을 겨냥한 범유럽 채널 MTV 유럽을 개국함. 첫 송출 뮤직비디오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Money for Nothing〉을 내보내며 수백만 유럽 가구에 도달. 미국식 뮤직비디오 편성 모델을 해외로 확장한 국제화의 출발점.
MTV가 헤비메탈 뮤직비디오와 밴드 인터뷰를 집중 편성하는 《Headbangers Ball》을 시작함. 글램 메탈부터 스래시·얼터너티브 메탈까지 장르 팬층을 위한 장시간 전문 편성의 대표 사례가 됨.
MTV가 주간 프로그램 《더 위크 인 록》과 짧은 뉴스 브리핑을 중심으로 MTV 뉴스의 정규 편성을 구축함. 음악 소식에서 정치·사회·청년문화 보도로 영역을 넓히는 기반이 됨.
바이어컴이 MTV 네트웍스의 잔여 지분 인수를 완료해 회사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함. 1985년 단계적 지분 매입과 12월 합병 계약에 이은 거래 완료로, 이후 MTV·니켈로디언 등 케이블 채널을 바이어컴의 핵심 사업으로 확장하는 기반이 됨.
MTV가 주류 록 편성 밖의 얼터너티브·인디 음악을 소개하는 심야 프로그램 《120 Minutes》를 시작함. 이후 대학 라디오와 독립 음악 장면의 아티스트가 전국 시청자에게 노출되는 주요 창구가 됨.
MTV가 런던 웸블리와 필라델피아 JFK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약 16시간에 걸쳐 전편 중계함. 세계적 자선 공연의 동시대 현장을 전달하며 음악 전문 채널의 생중계 역량과 영향력을 보여준 사건.
MTV가 1984년 9월 14일 첫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를 개최함. 벳 미들러와 댄 애크로이드가 진행했으며, 마돈나가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Like a Virgin〉을 공연한 장면이 시상식의 도발적 무대 이미지를 형성함. 뮤직비디오를 독립된 시상·공연 문화로 제도화한 연례 행사의 시작.
MTV가 존 랜디스가 연출한 약 14분 분량의 〈Thriller〉 뮤직비디오를 처음 방영함. 장편 서사와 영화적 제작 방식을 갖춘 작품을 집중 편성하며 뮤직비디오의 규모와 문화적 위상을 넓힌 사건.
MTV가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뮤직비디오를 정규 편성에 올림. 초기 록 중심 편성에서 흑인 아티스트의 팝·R&B 영상이 대규모 회전에 진입한 상징적 전환으로, 뒤이어 〈Beat It〉도 집중 방영됨.
MTV가 유명 음악가들이 시청자에게 케이블 사업자에 MTV 편성을 요구하도록 독려하는 「I Want My MTV!」 광고 캠페인을 시작함. 낮은 초기 보급률을 끌어올리고 채널 구호를 대중문화의 유행어로 만든 마케팅 전환점.
워너-아멕스 새틀라이트 엔터테인먼트가 1981년 8월 1일 0시 1분(미 동부시간) MTV를 개국함. "신사 숙녀 여러분, 로큰롤(Ladies and gentlemen, rock and roll)"이라는 멘트에 이어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첫 뮤직비디오로 송출. 뮤직비디오를 연속 편성하고 VJ가 곡을 소개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음악 소비를 시각 매체로 전환한 출발점.
국가보훈부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발표한 2025년 월별 ‘이달의 독립운동’ 가운데 8월의 사건으로 일장기 말소사건을 선정함. 개인 중심의 ‘이달의 독립운동가’와 별도로 사건과 단체를 조명하려는 구성으로, 일장기 말소 보도를 일제강점기 언론 저항과 민족의식 고취를 보여주는 독립운동으로 공식 기념한 사례.
조선중앙일보가 1936년 9월 자진 휴간 이후 발행을 재개하지 못한 채 1937년 11월 5일 발행 허가의 효력을 상실함. 일장기 말소 보도에 대한 총독부 수사와 정간 압박에 더해 휴간 중의 경영 내분과 취약한 재정 기반이 겹치면서 사실상 폐간으로 귀결됨.
동아일보가 장기 정간 끝에 1937년 6월 발행을 재개함. 복간 과정에서 사장 송진우와 주요 간부·사원이 물러나고 백관수가 새 사장으로 선임됨. 조선총독부가 요구한 핵심 간부 임명 사전 승인과 편집·검열 지침을 수용한 결과로, 일장기 말소사건이 개별 기사 제재를 넘어 한글 신문의 인사와 편집 방향을 통제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줌. 정간 해제와 복간의 정확한 날짜가 자료별로 6월 1일부터 3일까지 다르게 제시되어 월 단위로 기록함.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1936년 8월 27일 동아일보에 무기정간을 통보함. 동아일보는 이미 인쇄한 8월 28일자를 마지막으로 29일부터 발행을 중단함. 이길용·이상범 등 직접 관련자뿐 아니라 사회부장 현진건과 잡지 편집 관계자 등 다수가 연행되어 취조받음. 총독부가 복간 조건으로 사장 송진우를 비롯한 주요 간부와 관련 사원의 퇴직, 핵심 간부 임명에 대한 사전 승인, 편집 지침 수용 등을 요구하면서 언론사 인사와 지면에 대한 통제로 확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