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보 전투
항일 유격대와 국내 비밀조직인 조국광복회 회원 등 약 180여 명이 압록강을 건너 보천보를 기습. 만주 지역에 국한되었던 무장 독립 투쟁이 한반도 내부로 진입하여 발생했다는 점에서 침체기였던 독립운동 상황 속에서 한국 민중에게 큰 항일 희망을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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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유격대와 국내 비밀조직인 조국광복회 회원 등 약 180여 명이 압록강을 건너 보천보를 기습. 만주 지역에 국한되었던 무장 독립 투쟁이 한반도 내부로 진입하여 발생했다는 점에서 침체기였던 독립운동 상황 속에서 한국 민중에게 큰 항일 희망을 줌.
피카소가 파리에서 대형 유화 《게르니카》를 완성. 높이 약 3.49미터, 너비 약 7.77미터의 화면에 고통받는 인물과 동물, 불빛을 흑백과 회색 중심으로 구성한 작품.
전투의 승패나 영웅의 무용담 대신 파괴와 상실을 화면 중심에 둔 선택. 구체적 사건에서 출발하면서도 전쟁이 삶을 무너뜨리는 문제를 폭넓게 환기하게 된 형식적 기반.
미국의 배우 진 할로. (1911년~)
일제가 수양동우회 관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하면서 이광수도 1937년 6월 7일 체포·수감됨. 검거는 이후 서울 본부와 평양·선천·안악 등 각지의 회원으로 확대돼 모두 181명이 붙잡힘. 수양동우회 조직이 사실상 와해되고 이광수의 장기적인 수사와 재판이 시작된 사건.
대한민국의 정치인 문희갑.
소련의 군인 미하일 투하쳅스키. (1893년~)
노르웨이 의회가 정부 각료와 노벨위원의 겸임에 관한 제한을 공식 규정함. 위원이 각료가 되거나 각료가 위원으로 선출되면 장관 재직 기간에는 위원회에서 물러나고 대체위원이 참여하도록 정한 조치. 1936년 오시에츠키 선정을 둘러싼 외교적 갈등 이후 정부와 평화상 심사의 거리를 분명히 한 제도화.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8월 15일 예심 종결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음. 지병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출소한 뒤 같은 해 12월 24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에 입원함.
동아일보가 장기 정간 끝에 1937년 6월 발행을 재개함. 복간 과정에서 사장 송진우와 주요 간부·사원이 물러나고 백관수가 새 사장으로 선임됨. 조선총독부가 요구한 핵심 간부 임명 사전 승인과 편집·검열 지침을 수용한 결과로, 일장기 말소사건이 개별 기사 제재를 넘어 한글 신문의 인사와 편집 방향을 통제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줌. 정간 해제와 복간의 정확한 날짜가 자료별로 6월 1일부터 3일까지 다르게 제시되어 월 단위로 기록함.